베를린에서의 요즘 일상을 나눠달라.
7 월에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이라 마무리를 하고 있다. 앞으로 베를린은 일 때문에만 왔다 갔다 할 것 같은데, 살러 오지는 않을 것 같다. 인생이 뜻대로 되는 게 없다(웃음).
막스 플랑크 분자유전학 연구소에 연구원으로 있으면서 자유대에서 수학과 컴퓨터 공학부 박사과정에 있다.
막스 플랑크 연구소가 학교가 아니어서 대학과 연계해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나는 자유대 소속으로 논문은 연구소와 학교 둘 다를 위해 쓰고 있다. 유전체 연구를 하고 있는데, 생물학을 컴퓨터를 이용해서 하는 재미없는 학문이다(웃음). 논문은 한국과 베를린을 오가며 마무리할 것 같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과 생명과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생물 정보학을 공부했다. 이질적인 분야를 동시에 공부한 계기가 있나?
어려서부터 컴퓨터를 좋아했다. 그 시절 남자들이 그러듯 게임도 좋아했다. 대학에서 컴퓨터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이 다른 전공으로 전자공학을 하길래 나는 다른 것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생명과학을 선택했다.
전공을 살려 삼성전자에서 몇 년간 일했다. 그만두고 다시 학교로 갔는데, 당시 많은 사람이 선망하던 대기업을 그만두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민주당이 집권했던 시절인데 학자금 대출의 금리가 7%나 되었다. 당장 갚기는 해야겠는데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기가 싫어서 큰 고민 없이 돈을 제일 많이 주는 회사로 간 것이다. 목표금액을 채워서 그만두었다. 그만둘 때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 삼성이 대단히 도덕적인 회사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공정할 필요는 있다. 특히 한국 기업들을 다룰 때는 경쟁자인 다국적기업들도 생각을 좀 해야 한다. 예를 들어 국가 간 법령의 허점을 이용해서 합법적으로 엄청난 양의 세금을 안 내는 회사들은 놔두고 네이버만 때리면 안 된다. 삼성전자도 마찬가지다. 폭스콘에 생산을 맡기는 애플이 삼성전자보다 더 도덕적일까?
2014 년 의사, 의료정책 연구원과 함께 희귀병 아이들의 유전체를 검사하고 후보 질병을 찾아내 의료진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단체인 코리아>를 설립했다.
우연히 미국의 를 발견하고 뜻이 맞는 동료들에게 한국에도 단체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 창업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함께 대회에 나가 우승도 하고, 그 자금으로 코리아>를 설립했다. 그때가 마침 내가 독일로 와야 하는 시점이라서 그 이후의 활동은 이어가지 못했다. 당시 함께 했던 사람들이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다. 홈페이지도 있다(RG 코리아: http://raregenomics.or.kr). 나는 일을 잘 벌이는 편인데, 그래도 어떤 일을 하면 손해나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손해라 하면 어떤 의미인가?
시간을 투자했는데 결과가 없으면 손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코리아>의 경우 희귀질환 진단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리는 신기술(유전체 분석기술)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크라우드 펀딩을 했는데, 업체 측 집계에 의하면 70 만 명 이상에게 노출이 되었다고 한다. 코리아>를 시작할 때 모두가 좋은 일을 해보자는 취지에 동의했고, 개인의 성장에도 도움이 될 것인가 따져보고 시작한 일이었기 때문에 서로 잘 맞았던 것 같다.
같이 일하다 보면 어떤 사람들과 잘 맞는 것 같나?
특별히 안 맞는 부분을 이야기 하자면(웃음), 감정적인 사람들과 잘 안 맞는 것 같다. 자기감정을 돌봐주길 원하는 사람들과 일을 잘 못 하는 편이다. 나는 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기보다는 좋은 결론을 내고 싶은데, 결론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나의 감정이 중요하다고 하면 일이 잘 진행되지 않는다. 가족이나 친구, 특별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면 감정을 살피는 일이 중요하겠지만, 그게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갖고 만난 사람이라면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과는 잘 충돌하는데, 그렇게 되면 나도 마음이 좋지 않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태양광 대여사업 및 태양광 발전사업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해줌(HAEZOOM)>의 최고기술 책임자(CTO)이자 유럽법인(독일 베를린) 매니징 디렉터이다(해줌: http://haezoom.com/). 이 일을 통해서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옛날에는 사람들을 선동하는 일을 하려고 했다면(웃음), 지금은 소박하지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신재생 에너지를 확대 보급하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그렇기 위해서는 시장(Market)을 잘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시장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서, 태양광을 어떻게 확대 보급하게 시키는가에 대해서는 나와 녹색당의 견해가 다를 수 있다. 어떤 분들은 시민운동의 관점에서 협동조합을 만들어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는 운동을 하자고 하는 분들이 있지만, 나는 물론 그런 방법도 좋지만, 결정적으로 태양광을 확대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독일의 경우, 소비자들이 직접 전기회사를 선택할 수 있고, 어떤 발전으로 생산된 전기냐 까지도 선택할 수 있다.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은 완벽한 시장원리에 부합하는, 신재생 에너지를 확장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이 전기 생산을 할 수 있는 독일의 상황과 한국같이 한전이라는 정부 기관에서 잡은 상황은 다르지 않은가?
한국에서도 생산은 개인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한전을 거치지 않고는 전력거래가 안 된다. 앞으로는 한전의 역할도 바뀔 것이고, 한전에 계신 분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다. 독일의 경우, 태양광을 설치하면 일정 이윤을 남길 수 있는 가격을 보장하면서 정부가 전력망을 연결해준다고 보장을 해주었다. 이러한 제도가 재생에너지 전환에 정말 큰 역할을 했다.
사실 우리나라도 ‘발전차액지원제도’라는 비슷한 제도가 있었는데 이명박 정부 때 없어졌다. 독일이나 한국이나 시민운동이 사람들의 의식전환에 큰 역할을 한다고 본다. 하지만, 그 결과로서 이러한 제도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까지 연결이 되면 의미가 더 클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녹색당이 원내에 진출해야 한다. 나는 민주당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는다(웃음).
박원순 시장의 원전 하나 줄이기 사업에서 태양광 설치를 하는 운동은 어떤가?
아파트 옥상이나 베란다에 태양광을 설치하는 것은 좋은 것 같다. 한국은 아파트에 거주하는 세대가 많으므로 이 점을 잘 활용해야 한다. 앞으로 전기자동차 보급이 확대되면 더 환상적인 일들이 생길 것이다. 전기자동차는 움직이는 대용량 배터리라고 보면 된다. 예를 들면 비 오는 날에는 아파트 주차장에 주차된 전기자동차들이 아파트에 전기를 공급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 멋지지 않나?
3 년 동안 독일에서의 생활과 연구가 도움이 많이 됐나?
독일 사회에 대해 조금 알게 됐고, 여기서 좋은 것들도 많이 봤고 안 좋은 것들도 많이 봤다. 한국에 가서 할 일이 많을 것 같다. 독일은 전반적으로 빨리 결정하진 않지만 한번 결정하면 꾸준히 한다는 장점이 있다. 이 일이 잘되든 안되든 밀어붙이는 힘이 있다. 단점은 뭐든 느리다. 한국에서 이틀이면 할 일을 한 달에 거쳐서 하고, 한 달이면 할 것을 석 달 걸려서 한다(웃음). 나는 소프트웨어 기술에 전문성이 있어서 이와 관련된 아이디어들을 특별히 많이 살펴봤다. 돌아가면 말보다는 뭔가를 만드는 방식으로 기여하고 싶다. 얼마 전에는 신문사 기고도 했는데 편집을 상당히 하신 것 같다(기사:http://www.e2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07704).
지난 2 월 말, 베를린 모 한인 식당에서 사장이 직원을 추행하는 미투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피해자를 실질적으로 도울 방안을 적극적으로 제시했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했던 이유는?
그 식당에 몇 번 간 적이 있다. 종종 밤 12 시 넘어서 종업원들에게 술을 권하는 모습을 봤는데, 피해자가 글을 올렸을 때 그럴 수 있다는 개연성이 느껴졌다. ‘이 사람이 좀 위험한 사람이구나’ 생각했고, 구체적으로 피해를 본 사람이 있다면 신고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외국에서 신고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고, 어떠한 장벽이 있어서 못하는 것이라면 돕고 싶었다. 그리고 이왕 독일에 녹색당 모임이 있으므로 녹색당 차원에서 당연히 이 사안에 관여하여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사람, 옳은 일을 하는 사람,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마음먹게 된 계기가 있나?
이십 대 순진할 때 그랬던 것 같다. 지금은 나 자신을 스스로 도덕적으로 올바른 캐릭터로 가져갈 생각은 없다. 그냥 평균만 하자고 생각한다. 평균의 인간이 그렇게 착한 사람 같지는 않지만, 그 정도만 하자.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 이야기들 속에서 눈에 자주 밟히는 대상 혹은 분야가 있다면?
요즘 <자연인>이라는 프로를 열심히 본다(낄낄낄). 산 타면서 도라지 캐고, 인삼이나 산삼 캐는 사람들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푼다. 산에 왜 들어갔는지 사연도 듣고. 요즘은 예전처럼 열정적이지 않은 것 같다. 옛날에 벌여놓은 일 수습하다가 끝날 것 같다(웃음).
“나는 사실 보수주의자인데 한국에서 태어나 화염병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된 보수 정치인이 출현하면 나는 언제든지 근육을 길러 피지컬부터 애국 보수의 길로 돌아설 자세가 되어 있다.”라고도 생각하는 사람이 어쩌다 녹색당원이 되었나?
일단 내가 녹색성장과 창조경제랑 잘 어울리는 사람 아니냐(웃음)? ‘햇빛지도(건물의 지붕에 입사되는 태양에너지의 양을 예측하여 태양광 패널설치 시의 경제성을 분석하는 방법. 햇빛지도:http://map.haezoom.com/)’를 만들 때, 우리나라에는 왜 이런 게 없지 찾아보다가 독일 녹색당을 알게 되었고, 한국에도 있나 하고 찾아보니 한국에도 녹색당이 있더라. 그래서 가입하게 됐다. 그렇지만 녹색당이 주장하는 모든 것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다. 나는 에너지 정책, 동물권 관련해서 녹색당과 동의한다. 하지만 그 외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 것도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 녹색당의 가치다. 삶에서 민주적이라고 느낀 경험이 있나?
사실 나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강하지는 않다. 민주주의가 최선의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 많이 봐왔다. 솔직히 말하면 만약 리더가 똑똑하고 도덕적이면 독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럴만한 사람이 별로 없으니까 민주주의를 하는 거지 정도로만 생각한다. 나는 우리 독일인 교수님이 좀 민주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분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좋은 리더는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기보다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두 취합해서 좋은 결론으로 잘 요리해 내는 사람인 것이다. 이런 사람이 훌륭한 사람 같다. 교수님을 보면 본인이 잘 결정을 안 하고 여러 사람 의견을 잘 섞어서 물건을 잘 만들더라(웃음). 그런 리더십이 독일에 많은 것 같다.
앙겔라 메르켈이 그런 리더십의 사람이라고 하지 않은가? 반면에 그를 여론을 이리저리 살핀 후에 자기 입장을 정하는 능구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좋은지 나쁜지 모르겠지만 그게 민주사회의 리더인 것 같다. 신념을 가지고 ‘이것은 반드시 해야 해!’라고 밀어붙이는 태도와 독재는 그렇게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뜬금없이 마지막 질문이지만, 김종규에게 녹색이란?
아직 오지 않은 미래.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웃음).
* 인터뷰이: 김종규(베를린) / 인터뷰어 및 정리: 손어진(베를린)
* 인터뷰 날짜: 2018년 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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