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13 10:32
모인 사람: 예슬, 현화, 태선 & 가람이, 비아, 오름이
모인 날짜 및 장소: 17.02.2019 뒤셀도르프 Wilma Wunder Düsseldorf (Martin-Luther-Platz 27, 40212 Düsseldorf); 모이기로 했던 Cafe Heinemann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장소를 옮김
예슬: 독일 7년차인생 "안경계란"입니다. 요즘은 거꾸로 잃어가는 한국어를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빠져 있습니다.
현화: 독일에서 6년째 거주중. 비아, 가람, 오름이 엄마, 파트타임 연구원, 언제나 잉여롭고 피곤함
태선: 독일에서 5년째 거주중, 닉네임 “펭귄”, 요리와 여행을 사랑, 맛있는 음식은 더 사랑함 :D
바람은 차갑지만 햇볕이 따뜻했던 일요일 오후, 카페에 앉은 세 여성은 할 말이 많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독서 토론‚ 마리아 미즈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1986)*"입니다. 연관이 있을 것 같으면서도 아리송한 두 개념,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저자는 이 두 개념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식민지로부터 유출되는 재화와 자본이 축적되면서 여성은 집안의 가장(남성)이 안정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 안착할 수 있도록 집 안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도맡게 됐고, 가부장제가 정착되면서 여성의 가사 노동은 임금의 가치가 매겨지지 않는 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여성의 무임금 가사 노동은 자본주의 제도 안에서 국가의 발전 상태-선진국, 개발도상국-와는 무관하게 공통된 특징으로 자리잡게 됐었고,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여성운동이 기존의 착취/권력 그룹에 속해서 목소리를 내기 보다 과감하게 착취-피착취의 고리를 끊고 독립적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대안을 제시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태선) 여기까지가 1장까지 읽은 내용의 감상인데, 우리 셋 모두 저자의 말에 동감했습니다. 특히, 여성의 무임금 가사노동에 대해서 피부로 느끼는 바가 많았죠. 부모님이 모두 사회 생활을 했지만, 집에 오면 엄마 홀로 바쁘게 저녁을 준비하고 설거지까지 하는 광경을 보고 자란 저에게는 마리아 미즈의 주장이 너무나 사실적이었습니다. 아빠의 승진과 화려한 사회생활 뒤에는 항상 엄마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엄마의 전철을 밟아야 할까를 고민하기 시작한 태선에게 ‚페미니즘‘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 관념들에 대해서 „왜?“ 라는 질문을 던지게 해준 열쇠였습니다. 독일에 살면서 누구의 딸 혹은, 며느리/아내/엄마의 이름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살기에 적응할 때 즈음, 이제는 육아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갑니다. 경력 단절 문제는 한국과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독일에서도 여전한 의제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독일에서는 단시간 근무제 (파트타임)이 가능하기에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의 정도가 심하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독일의 제도에서 마음의 위안을 받았지만, 주로 여성이 단시간 근무제를 신청한다는 사실에 현실의 벽을 느꼈어요.
현화) 남편이 잠시 한국에 간 사이 첫 모임을 하게 되여 부득이하게 아이들과 함께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때문에 다소 모임이 어수선해진 것이 아닌가 참 미안합니다.
책은 이제 절반 정도 읽었네요. 고전(?)이라고 해도 될 만큼 초판 된지20년이 넘은 책이라 마리아 미즈의 주장은 꽤 익숙한 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진행중이라는 것이 씁쓸합니다. 방대한 분량의 자료와 빡빡한 케이스들을 작은 화면으로 읽는 것이 쉽진 않지만, 하나하나 꼼꼼히 읽는 것이 (결코 최근의 자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신선하고 새로웠습니다. 한가지 인상적이었던 것은– 아프리카 식민지의 노예 공동체에서 출산 파업이 있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온갖 수를 다 썼지만, 노예들은 결혼하려 하지 않고, 임신을 하더라도 낙태를 하고, 출산을 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죠. 어디선가 많이 듣던 이야기 아닌가요?
제 자신이 세 아이가 있는 기혼여성이기 때문에 이 책의 이야기들은 하나하나 뼈아프게 다가옵니다. 저는 독일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즉 간신히 커리어를 이어가며) 육아와 가사를 (허덕이며) 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절대적으로 육아와 가사를 많이 도와주고 있지만, 여전히 하루의 생활은 버겁습니다. 한국과 비교를 했을 때 그래도 괜찮은 편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왠지 나의 자리를 잘 못 잡는 것 같은 느낌도 드는 거죠. 이 책의 주장과 같은 저항은 독일에서 아직도 진행중입니다. 한국의 상황을 생각하면 갈 길이 더 멀겠죠. 나 개인은 무엇을 어찌하면 좋을까 고민이 많습니다.
오랜만에 우리말로 서로의 경험과 생각을 나눌 수 있어서 참 의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모임이 기대되요! 또 만나요!
예슬) 저에게 있어서는 '페미니즘'이라던지 '여성주의'라던지 그런 단어들을 들을 때마다 항상 불충분의 미지의 세계였으나, 이번 기회를 통해 뭔가 새롭게 알 수 있거나, 혹은 항상 가지고 다니던 의문점을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해서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 날 언니들을 만나기 전까지 책을 읽은 부분은 차례부터 3장 식민화와 가정주부화 에서 '여성, 자연, 식민지의 종속:자본주의적 가부장제 혹은 문명사회의 기반'이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부분은 이 책이 20년전에 쓰여 졌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통용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예전과 지금의 여성인권에 대한 실상이 별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또 앞장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항상 품고 있었던 의구심 '어째서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구분되어야 하는지', 혹은 '외부의 요인으로 인해서 구분 되었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점에 대해 책을 통해 명쾌하게 답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첫 모임이었던 관계로 저에게는 언니들을 만나게 된 것이 제일 흥미로웠습니다. 아무래도 개념적인 부분에서 아는 지식이 없다 보니, 저에게는 조금 더 많이 만나보고 대화를 나누며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본인이 경험했던 성차별, 불평등에 대해서 열심히 얘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 가는 줄도 몰랐던 첫 모임이었습니다. 두 시간 정도의 대화를 마무리 하고, 다음 모임에서는 여성영화제나 여성문제를 주제로 한 전시를 보기로 했습니다. 때마침, 4월 9-14일 도르트문드/쾰른에서 국제여성영화제를 상영한다고 하니, 재미있는 영화도 같이 보고 모임을 하는 것을 계획 중 입니다. (https://www.frauenfilmfestival.eu)
곧 두 번째 모임 일정이 확정되면 재빨리 공지 올리겠습니다. 다음 만날 때까지, 안녕!
*원작의 제목은 Patriarchy and Accumulation on a World Scale: Women in the International Division of Labour (Colonization and housewifiz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