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유 당원 중에 가장 오래 독일에 지낸 당원 중의 한 명이다. 독일에 오게 된 계기는?
독일이 만만하게 느껴졌나 보다. 유학하시던 아버지, 간호사였던 어머니 덕분에(?) 독일에서 태어나 5살까지 자라다가 한국에 가게 되었다. 두 분 다 바쁘셔서 독일말만 했는데, 한국 와서 한 해 지나니 한국어만 나오더라. 그럭저럭 지내다가 대학공부는 정말 재미가 없었고 등록비는 아까웠다. 차라리 하던 차, 만만한 곳이 독일이었다. 기초반부터 언어를 다시 배워야 했지만, 마치 연어가 제 고향 찾아가듯 누나도 나도 돌아와 살고 있다. 나는 여기서 일을 하며, 아이들을 낳아 키우고, 사랑하며 삶을 꾸려가고 있음에도 한국에서는 언제 끝나서 돌아오냐고들 한다. 뭐가 끝나야 끝나는 것인가. 햇수로 따지면 금년으로 내 인생의 반을 한국에서 반은 독일에서 산 셈이다. 1.5세들이라 불리는 친구들이 비슷하다.
독일에서 환경공학을 전공했고, 브란덴부르크 공대에서 연구원으로 생활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특별히 이 학문을 선택한 이유가 있는가?
정확히는 도시 및 지역 계획학을 전공했다. 시작은 아무래도 아버지 영향이 컸다. 도시계획이라는 학문은 너무 광범위해서 시대와 지역에 따라 사회학과 친하기도 하고, 행정이나 부동산 경제학에 붙기도 하며, 건축이나 토목공학이 될 수도 있다. 졸업을 할 즈음, 베트남 호찌민시의 발전을 전략적으로 계획하는 독일 정부의 메가시티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기본적인 인프라도 없이 무섭게 팽창하는 개도국 도시들에 선진국의 경험을 활용하여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하면서 산업의 교두보를 놓는 흥미로운 프로젝트였는데, 기후변화의 시대적인 이슈를 따라 현재까지 환경계획 연구소에서 도시계획의 환경적인 부분을 가르치고 연구하고 있다.
학문의 영역에 있지만 현장을 굉장히 많이 다닌다. 독일 곳곳에서 열리는 축제, 시위현장, 단체 및 시설 등을 돌아다니면서 느끼는 무언가가 있는가?
사실 요즘 꽤 오래 활동을 안 해서 몸이 근질거린다. 그렇다고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도 아니다. 일상을 탈출하여 현장의 생생한 사람 소리들, 연대하는 마음들의 모임, 열정을 표출하는 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은 비록 실질적으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새로운 에너지를 준다고나 할까. 사실 한국에서 환경, 도시, 생태, 복지에 대하여 많이들 보러 온다. 책에 다 나와 있는 내용이기도 하고, 프라이부르크의 한 기관은 매년 3,000여 건의 문의에 일할 수가 없다며 내용이 공유 안 되냐고 묻는다. 물론 한 번 비행으로 일 년 치 탄소를 다 소비해 버리는 것에 대해서는 약간 미안한 감이 있지만, 사람은 현장에서 만나고 보고 듣고 느껴야 한다. 꼭 문헌과 프레젠테이션이 아니라 흥겨운 기분으로 구석구석 디테일을 보면서 물음을 가지는 것은 무엇보다 큰 배움이다.
녹유 창당멤버다. 관심을 갖고 당원으로 참여했던 계기는?
실은 녹색당이 있는지도 몰랐을 때, 염모 씨(웃음) 열성 당원에 의해 강제접수되었다. 8,000km 떨어진 후쿠시마의 원전사고는 독일의 에너지 지도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한국에서도 그에 맞춰 녹색당이 태어났고, 탈핵 운동이나 환경, 나라를 위한다며 열정페이를 요구하시는 분들이 워낙 많아, 당 지도부(?)에서 오니 준비해 달라는 요청을 들었을 때는‚ 또? 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하지만 정말 가난하면서도 꾸준하게, 참신한 목소리를 가진 분들에 호감과 호기심이 발동했고, 구동독 작은 도시에서만 15년을 넘게 살았으니 약간의 자극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한 곳에만 있으면 외고집이 되기 쉽다. 다양한 논의가 비교적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는 녹유는 유학생들에게도 교민들에게도 매력적인 만남의 터라고 생각한다.
녹색당의 여러 의제 중 중요하게 생각하는 의제가 있다면?
의제들이 참 다양하고 전문영역을 아우르고 있지만, 당으로서 또는 소수당으로서 할 수 있는 역량의 한계는 분명하다. 하나하나의 의제보다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생각들이 의제화되고 그 의제들이 소신을 가진 리더들에 의해 -속물 정치가 아닌- 제도화를 시도하는 작업은 우리나라 정치환경에서 무척 힘든 일이겠지만 신선하고 지지할 만하다. 믿을 구석이 하나 정도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
에너지 분야를 포함 관련 번역, 통역, 연구 등 여러 활동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 하는 일 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무엇이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독일의 에너지 전환과 관련하여 시민단체와 정부, 기업, 정당과 연구소, 지자체들이 각각 어떻게 협력하고 줄다리기하는지, 기행이나 취재 통역을 하면서 함께 살펴보는 작업이 꽤 흥미로웠다. 그 외에도 어떤 특정 주제를 가지고 여행하려는 분들을 도와 연수를 기획하고, 가장 적절한 기관을 찾아내 연결하고 중간에서 언어나 문화적인 다리 역할을 하며 기행 하는 일. 여행도 하고, 그 분야에 관해서 공부도 하고, 용돈도 번다. 솔직히 준비하는 과정은 매우 힘들고, 오시는 분들에 따라 힘이 죽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덩달아 신나게 배우기도 한다. 특히 시민단체들이 자비를 들여 배우러 올 때는 그 학습열이나 열정이 대단하고 재미있다. 다음 해에는 차분히 정리를 해보고 싶다.
한국과 독일을 오가면서 이 두 나라의 큰 차이가 있다면 무엇이고, 그 차이가 어디에서 온다고 생각하는가?
설교를 들을 때도 그렇고, 공원을 거닐 때도 그렇고 독일은 “?” 인 것 같고, 한국은 “!” 를 좋아하는 듯하다. 포츠담 광장의 공원을 보여주면서 자주 설명을 한다. Foto: Philipp Eder, http://www.stadtentwicklung.berlin.de/planen/staedtebau-projekte/leipziger_platz/de/realisierung/oeff_raeume/index.shtml 최소한의 디자인 요소로 만든 넓은 잔디밭은 상당 모던하고 쿨한 도시 공간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여름 저녁이면 맥주를 들고나와 앉거나 누워있는 사람들, 뛰노는 아이들, 기타를 치거나 마냥 쉬고 있는 다양한 활동들을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최소한이지만 틀이 있고 법칙이 있다. 사람들은 이 법칙을 매우 존중하며 이 코덱스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비 사회화된 인간으로 취급받는다. 우리나라의 공원을 가보면, 너무나 정리되어 있다. 곳곳에 뛰는 길, 걷는 길, 이쪽저쪽으로 가라는 표지와 함께, 이곳에서는 어떤 활동이 가능한지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표지와 시설이 즐비하다. 쉴 새 없이 잔잔한 클래식 음악들(만)이 흘러나오고 여기는 잘 관리되고 있는 공원이라는 사실을 인지하게끔 한다. 그런 공간에서는 ?가 잘 나올 수 있는 환경은 아닌 듯하다. !속에서 끊임없이 !를 재생산한다.
베를린으로 이사 오셨다. 베를린은 어떤 곳인 것 같은가?
쉬크와 지저분함이 공존하는, 천국이다. 녹색이 많고, 보물들이 여기저기 잘 숨겨져 있다. 아무도 생각지 못한 곳에서 갑자기 스크린이 세워지고 게릴라 영상축제가 열린다. 잘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좀 채 찾아내기 쉽지 않다. 저항이 강한 도시다. 베를린 산업기에 지어진 세입자 건축물은 평균 스무 가구 정도가 산다는데, 이들 중 한 둘이 꼭 힘을 합쳐 일을 벌이거나 저항한다. 다른 도시에서 보기 어려운 연대와 데모들, 축제들이 많은 도시다. 베를리너만의 막가는 듯한 자유분방함, 저항정신, 지저분한 그래피티와 거리들, 때로는 인상을 찌푸리게 하지만 덕분에 꽉 막히고 완전해 보이는 남부와는 달리 숨을 쉴 수 있는 곳이다.
문기덕에게 녹색이란?
도시계획에서 그뤼네 소세란 말이 있다. 잔디만큼 종의 다양성을 해치고 약을 뿌려야 유지되는 것도 없는데, 시민들은 말끔한 잔디밭이 조성되면 좋은 환경이 되었다고들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지자체로서도 나무를 심는 것보다 관리비가 덜 들고, 사람들이 좋아하니 적극적으로 먹여주고 쳐 주고 싶은 맛있는 소스다. 녹색은 속임수에 능한 사람들이 쓰기 좋은 색깔이며, 한편으로는 너무도 착한 색깔이기도 하다. 나는 내가 가진 적록약색 때문에 종종 당의 정체성에 대해 농담을 한다. 독일의 녹색당이 빨간 좌파들과 아나키스트, 히피들과 공생하며 성장했다면 우리나라의 녹색당은 싱싱한 풀, 깨끗한 먹거리의 어쩌면 너무도 착한 냄새가 풋풋하다. 쿨하다는 이미지도 있다. 젊은이들이 한때 자유롭게 생각을 펴고 놀고 다투기도 하고 또 기성세대들과 터울 없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플랫폼으로 더없이 훌륭한 녹색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열정적으로 이끌어 주고 있는 분들에게도 늘 감사하다.
인터뷰 일시: 2017년 6월 1일 목요일
인터뷰어: 손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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