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1.09 16:21
2018년 녹색당 유럽모임 총회 후기-조은애
가을이 깊어지는 10월 중순, 프랑크푸르트에서 녹색당 유럽모임 총회가 진행되었습니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2박 3일로 진행된 총회는 저에게 편안한 만남, 아늑한 숙소, 치열한 토론으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독일에 살고 있지만 다른 도시에 잘 안 다녀봐서 사실 프랑크푸르트에는 처음이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외곽의Kronberg/TS의 어두운 길을 헤매는 저희를 어디선가 나타난 고양이가 안내해줬습니다. 고양이에게 환영 받으며 총회 장소이자 숙소인 Fritz-Emmel-Haus에 도착한 것은 금요일 밤늦은 시간이었습니다. 슬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담소를 나누시던 당원분들이 따뜻하게 맞아주셨습니다.
작년 총회를 이후로 1년 만에 뵙는 분들도 계셨는데 비록 개인적으로는 잘 모르지만, 굉장히 반가웠습니다. 총회에 와야겠다고 생각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입니다. 같은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랄까요. 한국에서 살 때보다야 좀 더 좁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으니 불편함이 덜 하기는 합니다. 그래도 가끔은 저의 가치와 상반되는 사람을 만나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는 대화를 하다 보면 문득 그리워지곤 합니다. 녹색당이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들 말이죠. 예를 들어 나이나 출신이 중요하지 않은 것, 나를 어떻게 소개할지는 나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우리에게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새벽까지 소파에 둘러앉아 둥그런 지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다음 날 아침이 되니 자고 일어난 방은 커튼을 쳐놨는데도 빛이 들어와 밝게 느껴집니다. 씻고 숙소를 돌아보니 곳곳에 걸려 있는 그림과 칠해져 있는 페인트 색깔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뛰어다니기에 넉넉한 공간, 조금 여유 있게 잘 수 있었던 방, 큰 세미나실과 주방 등숙소 예약객이 적은 덕에 저희가 이 건물을 통째로 쓸 수 있었습니다. 아침밥은 간단했지만 차와 함께 햇빛을 즐기니 간단한 것도 좋다 생각됩니다.
아침을 먹은 후에는 본격적인 총회가 진행되었습니다.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1년 동안의 활동 보고 및 평가와 녹색당 유럽모임 규약 개정을 중점적으로 다뤘습니다. 규약 개정 부분에서 특히 많은 시간을 쏟았는데 피선거권과 당권자에 대한 규약에 대해 많은 의견이 오갔습니다. 저는 서기를 하고 있어서 정신없이 타자를 치느라 의견을 내기는 어려웠지만, 녹색당 유럽모임이 어떻게 하면 당원들의 참여를 더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가 이 토론의 목표였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주요 안건으로는 녹색당 유럽모임을 e.V로 등록하느냐였습니다. 현재는 개인 계좌가 대표 계좌여서 당비를 내고 관리하는 데에 한 개인이 부담을 가지고 있는 것이 큰 이유였습니다. 더불어 우리가 한국이 아닌 유럽에서 정당 모임으로써의 역할을 해낼 수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e.V 설립과 맞닿았던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은 저도 제 스스로 가끔 의문을 가지곤 했습니다. 한국에서 일어나는 시급한 일들에 먼 이곳에서 어떤 걸 할 수 있을지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독일까지 와서 한국인이라는 테두리를 더 강하게 긋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회의감이 들곤 했는데, 문득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이라도 하는 게 좋겠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e.V 설립은 결정되지 않았고 장단점등 기본 정보를 알아보고 고민하기로 했습니다. 저도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계속 생각을 놓지 않으려 합니다.
오후에는 베를린에서 오신 한미순 박사님의 독일 난민 현황과 난민 정책에 대한 강의가 있었습니다. 90년대부터 이 분야에서 일을 해오신 분의 강의는 생생한 현장감이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껏 두루뭉술하게 알았던 독일 내 상황에 대해 자세한 그림을 그려볼 수 있어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또한 난민이 독일 사회에 받아들여지는 데에 큰 역할을 한 것이 시민 사회라는 점을 알게 되었는데, 자원봉사 활동을 하는 독일인이 절반 이상이라는 것에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퇴근하고 집에 와 잠들기 바쁜 한국 사람들의 근무 시간이 단축되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강의 후에는 질의응답 시간이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어제(금요일) 저녁 김인건 당원님의 발표 후에 한국의 난민 현황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 질의응답 시간에 한국에서 난민을 반대하는 현 상황을 어떻게 타진해갈 수 있는가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질문이 오갔습니다. 때론 날카롭기도 했지만 분명 필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다른 결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생각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었습니다. 의견을 내기 어려운 주제이지만 말을 함으로써 생각의 차이를 들여다볼 수 있었고 그 다름에 대해 개인적인 비판이 아닌 의견의 공유가 이뤄졌다고 생각합니다.
저녁에는 2016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황금곰상을 수상한 '화염의 바다'를 공동체 상영으로 관람했습니다. 상영을 위해 준비 위원회에서는 이 다큐멘터리를 한국으로 수입한 영화사 '시네마 달'에 소규모 상영을 조건으로 정당한 상영료를 지불했다고 합니다. 영화를 만드는 저로서는 굉장히 감사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이탈리아의 남쪽에 위치한 섬이자 아프리카에서 보트를 타고 넘어오는 이민자들이 유럽에 처음 닿을 수 있는 섬, 람페두사에서의 삶을 보여줍니다. 110분의 러닝타임 동안 지난 20여 년 동안 수많은 이민자들을 구조하는 것이 일상의 한 부분이 된 이 섬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이 다큐멘터리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여기에 쓰기에는 무리일 것 같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한국의 EBS국제다큐영화제 사이트에서 4,000원에 보실 수 있으니 관람하시길 추천합니다.
(총회 마지막날 아침, 작은 세미나룸에서, 조은애)
마지막 날입니다. 여러분들이 아침 일찍 숙소를 떠나셔서 아침 식사는 몇 명이 조용히 먹었습니다. 총회가 진행된 3일 내내 날씨가 좋았는데 마지막 날인 일요일 아침에는 특히 더 밝게 햇빛이 쏟아졌습니다. 잠을 많이 못 자서 피곤했지만 오랜만에 따뜻하게 햇빛을 받고 있으니 식물의 아침처럼 기지개를 켜봤습니다. 태어난 고향, 태어난 나라와 먼 곳에서 산다는 것이 참 만만치 않습니다. 아마 많은 분에게 그렇겠지요. 그래서 가끔 이렇게 붉게 물들어가는 숲이 보이는 곳에서 편안한 사람들이 기다려주는 곳에 오는 것이 참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위로 또는 연대를 할 수 있는 장이 펼쳐지니까요. 녹색의 가치를 좇는 당원들과 함께한 2박 3일은 제가 왜 이 먼 곳에서 사는지 그 의미를 들여다보게 했습니다.
이 총회를 준비하느라 고생하신 운영위원 여러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p.s내년에 우리 또 만나서 다시 둥그런 지구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요!
-내년 총회를 기다리며 베를린에서 조은애 올림.
홍감님, 한 자 한 자 마음 담아 써주신 후기 잘 읽었어요. 첫 총회 참석이라 설레면서도 분주하지 않아 좋았던 총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