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6.10 12:08
일본 메이지유신 제대로 알기
-일시: 2018년 5월 25일 저녁 7시
-장소: 베를린 Birkenstr.46 10551 Café Tirrée
-참여: 은애, 상준, 승은, 상아, 어진
5월 모임에서는 일본의 메이지유신과 동아시아 침략전쟁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일본의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제국주의적 침략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한 일본학자들의 텍스트는, 일본인 스스로 역사를 되돌아보고 진실을 이야기 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습니다.
조선을 침략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시바의 조선관(1.지리학적, 지정학적 위치론 2.무능력론 3.양육강식의 제국주의 시대의 운명론)이 얼마나 허구적이었는가 이야기 나누며, 1894년 5월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을 때 일본중앙정부가 조선의 상황에 조직적으로 개입해 농민군을 몰살시키고, 7월 군대가 경복궁을 점령하여 청일전쟁을 일으키고, 이어진 명성황후살해사건까지 일본이 조선땅을 어떤 식으로 침략하려 했는지 역사를 짚어 보았습니다. 명성황후살해 사건은 일본 참모본부 육군중장 가와카미 소도쿠, 참모차장 조선공사 미우라고로우가 군인, 일본인 이주민 등을 동원해 저지른 역사상 보기드문 흉악사건 이었지요.
그런데 이러한 일본의 조선침략은 메이지시대(1868-1912) 때부터 시작된 것이라고 접근한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사무라이 출신으로 이투히로부미 등 조선 침략의 주역을 길러낸 요시다쇼인 등이 1873년 단계적으로 조선을 정벌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1975년에 조선과 강화도조약을 맺어 강제로 조선을 개방시켰습니다. 이것은 당시 집권자들이 메이지유신 후의 해이해진 민심을 다잡고 사기를 진작하기 위해 (실질적으로 개혁정책들로 인해 생겨난 사족들의 불평들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대조선 침략적 외교를 주장했습니다. 이것이 러일전쟁(1904), 조선병합(1910) 그리고 만주사변(1931), 중일전쟁(1937), 대미대영전쟁(1941-1945)까지 이어졌습니다.
하야시 후사오의 ‘대동아전쟁긍정론(1970)’은 대동아전쟁을 동아시아해방전쟁이라고 그리면서 식민주의, 정복주의로부터 탈피하기 위한 일본의 노력이며 분투였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빈곤한 역사주의에서 비롯한 자기 변명일 뿐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이를 통해 민족이라는 개념을 주문을 외우듯이 되풀이 하고 있는 일본의 역사의식을 비판했습니다.
이밖에도 1948년 전쟁 폐배를 선언하는 종전조서에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해야 하는 포츠담 선언이나 천황의 견해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 이후 일본의 역사인식과 역사교육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았습니다. 또한 일본의 근대화 당시 발생했던 환경오염, 군수산업 및 무기 발달, 번역사업 발달 등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눴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혹은 잘못 이해하고 있는 일본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토론할 수 있어서 좋았고, 시간가는줄 모르게 참 즐거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