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5.11 19:43
슈트트가르트21 사업에 대한 Kretschmann의 공식 서한
사랑하는 시민여러분께
지난 며칠 동안 페이스북과 트위터와 같은 매체를 통해 많은 시민들의 글이 저에게 전달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글들은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해주었습니다. 그 글들은 주민투표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슈트트가르트21 사업‘의 진행은 중지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주장과 관련하여 저는 여러분들께 이 공식 서한을 통해 제 의견을 전달하려고 합니다. 2011년 11월 27은 저에게 다양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날입니다. 우선 시민들은 ‚슈트트가르트21 사업‘의 중지에 관한 주민투표와 함께 바덴 뷔르템베르크 주 역사상 처음으로 선거를 넘어서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 사안에 대한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독일의 역사적 경험 때문에 이러한 직접 투표가 우리 독일인들에게 긍정적으로만 다가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저는 우리가 이룩한 이 투표에 대해 조금은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지난 주민투표와 함게 우리는 진정한 시민사회의 역사적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그날은 저에게 개인적으로 매우 씁쓸하고 아픈 날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날 다수는 우리 주가 계속해서 이 사업의 재정지원을 책임져야 한다고 표명했기 때문입니다. 최종적으로는 44개의 투표 지역 중 7개의 지역에서만 더 많은 투표자들이 재정지원 중단(‚슈트트가르트21 사업‘ 반대)에 찬성을 던졌습니다. 이에 반해 총 58.9%의 유표 투표가 재정지원중단에 관한 법률에 대해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특히 슈투트가르트 투표구에서도 제가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투표 결과가 발생했습니다. 52.9%의 유효 투표가 이 사업의 재정 지원 중단에 대해 반대했습니다. 약 십여년 동안 저와 녹색당은 주의회를 통해 이 산업에 반대하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대안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민투표의 결과는 저에게 받아들이기 힘든 아픈 결정이었습니다. 저는 스스로 다른 결과를 꿈꿨었습니다. 왜냐하면 제 스스로는 저희가 제시한 대안이 더 좋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우리의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논증들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을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고백해야만 하는 것이 저에게 또 다른 아픔입니다.
2011년 11월 27일 시민들은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분명한 민주주의자로서 그리고 총리로서 저는 이 시민들의 주권이 만들어낸 결과를 받아들입니다. 이를 통해서만이 이 사업에 대해 지속적으로 다시 검토할 수 있는 적법성이 민주주의의 몫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정치를 위해서 그리고 총리인 저 자신을 위해서 적합한 일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이 사업의 문제점과 약점들을 보여주는 것, 상처를 드러내고, 문제를 보완하는 것을 막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비판적이고 건설적인 중재 회의인 „슈트트가르트 21 플러스“가 도출한 것을 그렇게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주 정부와 특히 총리인 제가 이 사업을 중지시켜야만 하고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저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슈트트가르트 21 사업은 계속 진행될 것이라고. 그것을 분명히 다수의 투표자들이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민주주의의 핵심에 속하는 것입니다. 다수의 결정은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그것이 누군가의 마음에 들건, 그렇지 않건 말이지요.
모든 것이 분명합니다. 주민투표와 함께 슈트트가르트 21 사업의 재정 중단에 관한 것, 이 사업의 현실화에 관한 것 그리고 그 것에 대한 대안들 모두가 표결되었습니다. 이 사업을 찬성하는 논증과 이에 대한 대안적 논증들이 주민투표의 사전 작업으로 중재의 작업으로 마지막까지 포괄적 토론들을 통해 주장되었고 발표되었습니다. 저는 또한 기꺼이 강조하고 싶습니다. 저 자신도 이 사업에 대한 많은 비판적 의견에 참여했었습니다. 모든 논증들이 토론에 부쳐졌고, 변화되었고 그리고 숙고되었습니다. 모든 시민들이 이것들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가졌었습니다. 수백여의 행사와 포룸 그리고 토론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중재도 있었습니다. 아무도 배제되지 않았습니다. 약 일년 이상 이 주제가 도시와 지역 그리고 지역을 넘어서 집중적으로 다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바로 인터넷과 다양한 현대적 매체들의 시대에 정보들은 더 이상 숨어있거나 비밀이 될 수 없습니다. 이 사업을 위해 혹은 이 사업의 반대를 위해 말해진 사실들은 논의의 장에 공개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재정 중단을 위한 투표의 부결이 멈출 수 없이 무엇을 가지고 오는지는 분명했습니다: 역의 동쪽 측면은 철거되었고, Trogbauwerk을 위해 궁전 정원의 중앙 부분이 공사 현장으로 비워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나무들과 식수원은 잘리거나 이전되었습니다. 슈트트트가르트 21 사업에 대해 반대하는 논증들은 시민들에게 충분히 알려졌습니다. 주민투표를 위한 팜플렛에는 반대자들의 주장들이 가지고 있는 장단점이 충분히 소개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원하기만 한다면 모든 측면에서 세분화된 논증들을 이야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다수가 이 사업의 지속을 결정했습니다. 아무것도 누락되지 않고 시민들의 지식이 되었습니다.
직접민주주의의 상황과 직면하여 우리는 민주주의 정부형태 속에서 어떤 성숙한 시민에 대한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선거에 참여하고 투표를 하기 전에 충분히 정보를 얻고, 그 정보들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숙고된 판단과 결정을 내리리라는 것을 가정할 수 있습니다.
모든 시민들은 한 표를 행사할 수 있고, 모든 표는 동일한 가치를 지닙니다. „일인, 일표“는 민주주의의 핵심권리입니다. 그리고 모든 결정은 동일하게 계삽니다. 누가 그 표를 행사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교수와 청소부는 동일합니다. 그리고 근거와 동기 또한 항상 동일하게 취급됩니다. 누군가 정부를 잘 얻었는지 그렇지 못한지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민주주의의 다른 핵심은 다수가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이 사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다수결의 원칙 외에 어떤 것도 더 좋은 결정형태를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과연 누가 다수결의 원칙 외에 다른 방식으로 민주주의 사회의 결정에 적법성을 부여할 수 있을까요? 만약 분명한 다수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물음 앞에 의견을 표명한다면, 그것이 왜 다시 다루어질 필요가 있을까요. 다수의 투표와 결정이 아니라면 어떤 것을 통해 결정되어야 할까요. 녹적 동맹은 이미 매우 커다란 걸음을 걸었습니다. 거대한 다수가 국회에서 이 사업을 오래 전 결정했음에도 불고하고, 녹적 동맹은 이 결정은 다시 새롭게 주민투표라는 형식으로 이끌었습니다. 만약 이 사업에 대한 다수의 결정을 우리 스스로 부정한다면 어떻게 미래에 우리가 다수의 결정 위에 우리 스스로를 지탱할 수 있을까요.
아무도 다른 상대방의 주장을 자신의 것으로 하길 요구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미래에 자신의 주장에 대해 침묵할 것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몇 주간 발표된 많은 글들은 그 이상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시민들의 책임을 호소하고 있고 더 적법한 기대들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 책임 있는 정치인과 계획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글들은 주민투표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말라고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선거의 결과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 전반에 있어서 법과 권리에 의한 지배에 있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합니까. 왜 정치적 행위에 대한 적법성이 중요한 것입니까? 누가 국가적 상황에 대해 규정하고 결정하고 행위 합니까? 고대 철학자들이 쓴 것처럼 뛰어난 전문가들이 그렇게 해야 합니까?
이 사업에 관한 싸움은 깊고 거친 싸움이었습니다. 도시와 주 그리고 점점 더 많은 분열을 야기했습니다. 만약 이 주민투표의 최종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이 어려웠던 싸움이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계속해서 영원히 싸워야만 할까요.무엇이 대안입니까? 이러한 물음들이 여러분들의 편지와 인터넷 상의 글들을 읽는 동안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우리 사회의 근본적 민주주의 원리에 대해 묻는 것 외에, 어떤 대답을 여러분은 원하십니까.
아마도 당신들이 그렇게 글을 쓰게 만든 것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정치적 사안들에 대한 구체적 물음이 주민투표의 형식을 위해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은 보수정당들에서 주장하는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반대와 부정적 의견들과 함께인 것입니까? 이러한 입장은 불명예스러운 것도 아니고, 그들 자신은 좋은 근거들도 가지고 있을 겁입니다. 하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의견들과는 완전히 반대의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주의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테마에 대해 직접 결정하기를 원합니다. 비교적 높았던 주민투표에 대한 시민참여는 저에게 매우 분명한 증거로 다가왔습니다. 물론 원칙적으로는 의회 안에서의 다수만큼이나 시민의 다수도 당연히 부족한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거짓말과 진실에 대한 결정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단지 대안에 대한 결정에 관한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이 주민투표가 적법한 절차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그들에게 법치국가는 삼권분리의 원칙에 따라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법적 절차의 길이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이미 일부 사람들을 통해 논의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행정권에 대해 어떤 요구도 할 수 없습니다. 만약 그들이 우리가 주민투표를 통해 이 문제를 조심스럽게 시험한 것과 같은 방법을 직접 도입하지 않는 한 말이지요.
이 주제들과 관련하여 저에게 염려되는 것이 있습니다. 슈트트가르트 21 사업을 둘러싼 대항운동들은 이미 우리의 공화국의 미래를 위해 긍정적이고 길을 제시할 수 있는 결과를 도출했습니다. 우리는 이 운동을 통해 우리는 한 국가의 사업을 계획하는 문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안과 그 외의 많은 다른 것들과 관련하여 시민들의 참여를 다양한 층위에서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확장시키고 증가시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대항운동의 공식적 주역들이 이 주민투표의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 커다란 성공은 위협당할 것입니다.
제가 제기하는 물음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만약 명망 있고 인정받는 개인이 이 투표의 결과를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길 원한다면, 어떻게 시민권과 이 새로운 시민-민주주의는 작동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것은 우리의 정치적 일상에 구체적인 물음을 도출합니다. 만약 다음과 같이 분명한 결과를 보여준 주민투표가 있은 후 질문이 던져진 것입니다. 당신은 어떤 정치적 결정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정말 법을 만드는 과정 속에서 발생한 다수의 의지를 가볍게 무시하고 그것에 반대하고 그리고 결국 법과 권리를 지키지 않는 주총리와 주정부를 갖기를 원하십니까?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결국 아무도 이런 결론을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설령 투표를 통해 졌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런 것을 원한다면 우리는 우리 중 누군가에게 그 열매가 돌아오지 않는 발전을 향한 문을 열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업에 대한 주민들의 결정은 이 사업을 반대하는 우리에게는 매우 아픈 결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것은 비교 불가능하게 나쁜 것을 가져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우리의 민주법치국가를 의문시하는 일과 다름 없기 때문입니다.
Mit freundlichen Grüßen
Winfried Kretschma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