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5일 일요일 오후 3시, 그페미 온라인 북모임 후기 - 유태선


오드리 로드 <시스터 아웃사이더> <남자아이>,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분노의 활용>


함께하거나 다녀간 사람들: 오현화, 류진, 유태선, 이수빈, 손어진, 진실애



“오드리가 아들에게 내(엄마)가 너의 감정을 처리해 주는 존재가 아니다는 것을 가르치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 어진


흑인, 여성, 동성애자, 환자- 그녀의 인생을 수식하는 단어들이다. 독일에서 사회적 소수(이민자)이자 양성애자 여성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상호 교차적인 그녀의 페미니스트 삶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는다. 한 가지 다른 부분이 있다면, 그녀는 그녀의 생물학적 아들과 딸을 양육했다는 정도. 그래서 <남자아이 - 흑인 레즈비언 페미니스트의 응답>의 부분이 더욱 흥미로웠다. 소수자 중의 소수자였던 그녀가 자녀들과 어떤 대화를 나눴고 어떻게 그들을 훈육했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녀의 고민은 무엇이었는지 <남자아이>에서 엿볼 수 있다. 


아들 조너선이 불량배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해 도망치며 집에 왔을 때, 그녀가 다짜고짜 남자가 울면 못 쓴다는 식으로 다그쳤다. 곧 그녀는 아이에게 ‘맨박스’를 강요한 본인의 언행이 적절치 못하다고 반성했다. 화들짝 놀라는 그녀의 모습을 상상하며 나라면 어떻게 대처했을지 고민했다. 내 남동생은 어렸을 때 울보였는데, “남자가 울면 못쓴다”는 소리를 심심찮게 듣고 자랐다. 학교에서도 남학생이 눈물을 보이는 것은 어떤 ‘금기’였고 여자아이가 아닌 남자아이가 울면 그 다음날 친구들은 그 아이를 놀리기 일쑤였다-놀리는 무리에 나도 끼어있었다-. 어릴 때부터 각 개인의 다름을 이해하기 보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분리시키는 환경에서 자라온 나인데... 오드리가 조너선에게 위로를 건네는 부분을 읽으면서 아들을 향한 그녀의 미안함 감정과 복잡한 내면의 갈등, 모두 수긍이 갔다. 그리고, 이런 고민 끝에 내린 오드리의 결정에 나 역시 큰 위로를 받았다. “나는 내 아들을 백인 아버지들이 부패시킨 권력에 의해 파괴되지 않을, 그리고 그 권력에 안주하지도 않을 흑인 남성으로 키우고 싶다”.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 흑인 여성, 혐오, 그리고 분노>와 <분노의 활용 - 인종차별주의에 대응하는 여성들>은 오드리 뿐만 아니라 모든 여성이 겪었던 혹은 현재까지 계속되는 여성 혐오의 서사를 말하고 있다. 혐오가 사회에 내제되어 있을 때,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인식조차 못 한 채 살아간다”는 그녀의 구절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개그 프로그램에서 운전에 미숙한 ‘김여사’를 희화화하고 모두가 웃으며 넘어갈 때, 여성의 뚱뚱함/못생김을 내세운 예능이 대세가 될 때, 그리고 해외에서 동양 여성이 겪는 캣콜링을 별일 아닌 것으로 여길 때, 여성의 분노는 더 커진다. 이 분노는 사회 부조리에 저항하는 에너지가 되어 더 많은 분노가 쌓일수록 더 큰 행동이 만들어진다. 작년 호른바흐 (Hornbach) 동양 여성 비하 광고에 대응했던 우리의 모습이 그러했고, 우리의 힘으로 독일 광고위원회로부터 호른바흐 광고를 중단하라는 경고를 받아냈다. 


분노는 긍정의 효과를 내기도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분노의 늪’에 빠질 수 있음을 오드리는 고백한다. 잘못된 분노의 표출은 때로, ‘나’처럼 힘이 없는 이들을 향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맥락에서 “여적여 (여성의 적은 여성) 프레임”이 제3자에 의해 사용될 수 있고 서로를 혐오하게 되는 상황은 굉장히 위험하다.   오드리는 분노가 혐오보다는 더 유용하긴 하지만 분명히 한계를 지난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우리는 분노와 혐오를 넘어선 무언가가 필요하다. 오드리는 ‘자매애’를 언급하는데, 나는 이것을 ‘연대’로 해석했다. 결국 우리 여성이 인종차별/성차별에 대항하여 싸우는 목적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이해해 주는 “당신(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함이 아닌가.  


책을 읽고 난 후, 마치 내가 오드리의 강연에 참여했고 참가자들과 열렬하게 토론하고 나온 기분이다. 그녀의 삶을 간접 체험하면서 절망에 공감했고 또 용기에 위로받았다. 페미니즘의 가치를 지향하고 운동을 한다는 것은 여성이 처한 불행을 줄세우기 위함이 아니다. 더욱이, 그 줄 안에 경계선을 그어 누군가는 동정 받고 누군가는 승자의 줄로 갈아타는 것도 아니다. 치열하게 2020년을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에게 오드리는 강의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 하지 않았을까: 서로에게 그리고 스스로에게 너그러운 존재로 살아가요, 우리.   



다음 그페미 모임은 8월 2일 오후 3시 (독일 시간), 박민정 작가의 <아내들의 학교>입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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