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29 19:21
짧게 베를린에 머물다 가는 사람이 쓴 짧은 후기
나는 책을 읽을 때 좀처럼 진도를 빼지 못하는 편이다. 어렵거나 재미가 없으면 손에서 쉽게 놓아버린다. 그런데 녹색평론 5-6월호에 실린 좌담 ‘시민의회를 생각한다’는 금세 읽어내렸다. 작년 상반기에 있었던 국회의원 선거와 하반기에 시작된 촛불의 과정을 떠올리며 읽으니 어렵지 않았고 공감되는 내용도 많았다. 다수가 나처럼 즐겁게 읽었는지 훈훈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정작 나를 정말루 신이 나게 한 주제는 따로 있었다. G20, 이 주제는 우리가 읽은 녹색평론에 실리지 않았지만 가벼운 근황 토크 중에 예고없이 화두가 되었다. 지난 7월 7-8일에 있었던 G20 반대 집회와 경찰의 대응을 이야기 할 때 였다. 여러 의견이 오가며 우리가 모여 앉은 자리에서는 간간히 불꽃이 튀었다. 덕분에 대화의 리듬도 다양해졌다. 약간 격정된 목소리, 반론 후에 흐르는 잠깐의 적막,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던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의 머뭇거림, 또는 확신에 찬 명확한 울림. 다양한 목소리가 자진모리장단으로 휘몰아 치는 그 때, 나는 우리가 시민으로서 사소하지만 의미있는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 중 임을 발견했다. 이 토론이 이날 우리의 ‘좌담’이 되었다. 우리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이 재밌게 읽을 수 있도록 속기록을 남겼어야 하는 건데!
토론 내용을 글로 남기지는 못했지만 색동저고리와 녹빛치마의 조합을 닮은 모임장소의 풍경은 사진으로 남았다. Gleisdreieck 공원에 자리한 도시텃밭, 이 녹색녹색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녹색평론 읽기 모임이라니. 도시텃밭의 전경을 바라보던 그 때의 황홀경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지 못하는게 아쉽다. 녹색이 충만한 공간 한 편에 앉을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이 모임을 위해 만들어진 간이 의자가 특히나 마음에 들었다. 두 개의 키 작은 나무 기둥 위에 날씬한 나무 판자를 올려 만든 것이었다. 그 의자는 낯선이에게 텃세라도 부리듯 내 청바지의 엉덩이 부분에 500원짜리 동전 크기의 송진을 뱉어놓았다. 집 오는 길 남몰래 손톱으로 찐득한 송진을 긁어야 했지만 그 뒷이야기마저 낭만적인 추억으로 남았다. 덧붙이는 말. 텃밭에 올 기회가 없는 분에게 영화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