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녹색당 유럽모임 총회 후기

2016.09.28 22:35

EirYara 조회 수:190

시골마을 통나무집에서 이박삼일

글: 송윤지 | 편집: 정세연

 

나는 독일에 와 지내는 이번 일 년 동안 유럽에 살고 있는 녹색당원, 또는 녹색당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보고 싶었다. 같은 마음이었지만 여유가 없었던 서울살이와는 다르게, 그 호기심을 향한 발걸음이 쉽게 움직였다. 총회에 간다기 보다는 캠프를 떠나는 것처럼 배낭에 침낭까지 가득 챙겨 기차에 몸을 실었다. 독일 남서부에 있는 도시 프라이부르크에서 지역 열차를 타고 삼십분, 그곳에서 자동차를 타고 십오분을 가야 있는 작은 통나무집에 약 스무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모였다.

 

2016년 제 4회 녹색당 유럽모임 총회라는 이름 아래 누군가는 가족들과, 누군가는 열시간 남짓 밤버스를 타고, 누군가는 프랑스 파리에서 부터, 누군가는 퇴근길에 곧장 왔고, 그렇게 200년이 넘은 독일 전통집의 낮은 천정 아래 옹기종기 모였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저녁식사 준비. 누가 뭐라 할 것도 없이 저마다 칼을 쥐고 야채를 썰고, 밥을 짓고, 뜨거운 물을 올려 노란 카레를 끓였다. 와이파이도 없고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 그 곳에서 2박 3일의 시간이 시작됐다.

 

오픈 스페이스: 녹색당 유럽지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총회 주요 프로그램은 둘째 날 아침부터 시작됐다. 첫 번째로 ‘오픈 스페이스’ 토의시간. 오픈 스페이스란 하나의 대주제를 놓고 모여, 회의 참여자들이 자기 관심사에 따라 소주제를 직접 발의하고, 이후 주어진 시간(50분)과 장소로 분산되어 자율적, 동시다발적으로 모임을 꾸려나가는 회의 진행 기법이다.

 

우리는 ‘녹색당 유럽지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큰 주제 아래 ‘정치교육 교환 프로그램 기획’, ‘생활 속 정치 - 한국 녹색당원 in Germany’, ‘녹색당 유럽지부 네트워크 활성화’, ‘4대강 폐해를 유럽에 알릴 방법’, ‘녹색당 유럽지부 뉴스레터 활성화’, ‘유럽 내 공동체 탐방’, ‘프라이부르크에서 열릴 위안부 소녀상 건립식에서 공동으로 할 수 있는 캠페인 기획’ 등의 소주제 토의를 열고 열띤 대화를 나누었다. 그 전에도 이 기법을 사용한 토의에 참여한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오픈스페이스의 기본 정신과 원칙에 대한 안내가 있어서 더 좋았다. 참여자들이 한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흥미와 의욕에 따라 이동할 수 있는 등,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새로운 발상이 오가고 의기투합이 됐다.

 

총회 본 회의: 당원과 비당원의 경계가 없는 총회

우리가 모인 주된 목적인 총회 본 회의는 생각보다 많은 안건을 갖고 오랜 시간 진행되었다. 일 년 동안의 활동 및 예산 보고와 평가가 이루어지고 제 4기 여.남 공동운영위원장을 선출했다 (3기 위원장들이 재선출됨). 녹유의 회칙 및 규약에 변화를 주거나 운영방식에 대한 여러 안건을 논의할 수 있는 한 해에 한 번 뿐인 자리이기 때문에 밤 늦게까지 시간을 연장해가며 열띤 논의를 했다.

 

흥미로웠던 것은 총회 본 회의 참여자 약 15명 정도의 절반은 투표권이 없는 사람들이었다는 것. 게다가 투표권이 없는 사람들 중 또 절반은 비당원이었다. 나 역시 당비를 유럽 지부가 아닌 한국 중앙당으로 내고 있었기 때문에 이 총회에서는 투표권이 없었다. 대게 이런 경우 비투표권자들의 참여도나 집중력이 떨어질만한데, 그렇지 않고 경청하는 분위기에서 논의 전 과정에 함께하며 활발하게 의견을 제시했다. 사실상 투표권이 없는 사람들은 표결에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우리는 투표권자, 비투표권자 모두 투표하되, 비투표권자의 표는 유효득표가 아닌 여론조사의 기회로 삼았다. 이를 통해 폭넓은 의견수렵이 되었다고 본다. 표결에 부친 안건으로는 총회에 대한 당권자의 온라인 참여를 보장하는 안, 공동운영장 선거를 온라인의 진행하는 안, 선출직 운영위원을 두는 안이 있었다.

 

생태 몸놀이: 서로가 생각하는 열망, 절망, 환경, 정치를 몸으로 표현하고 나눈 시간

다음으로 이어진 생태 몸놀이 시간에는 프라이부르크의 비영리 예술기관 ‘Scientific Theater’에서 초빙한 강사와 함께 워크숍을 했다. 이미지 씨어터 등 다양한 몸놀이 기법으로 몸으로 표현하고 소통하는 기회를 가졌다. 몸을 움직이며 긴장을 푸는 간단한 체조와 게임으로 시작해서 둘, 셋씩 짝을 지어 호흡을 맞추기도 하고, 소그룹을 지어 다양한 주제들을 몸으로 표현했다. 예컨대 진행자가 열망, 절망, 슬픔, 기쁨, 자유 등의 주제를 주면 참여자들이 언어 없이 느낌과 움직임만으로 그 이미지를 함께 완성하는 식이었다.

 

나아가 주제에 대해 표현한 이미지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한 그룹이 되고, 그룹에서 가장 대표성을 띄는 이미지를 나타낸 사람을 한 명씩 뽑아봄으로써 전체 그룹(총회 참가자들)이 가진 어떤 개념 (예를 들어 ‘열망’)의 청사진을 확인하는 순서도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열망, 기쁨, 자유를 표현하는 것이 절망과 슬픔을 표현하는 것보다 어렵다고 했다. 좀 슬프게도 우리가 행복을 표현하는 것에 얼마나 익숙하지 않은지 알게된 것이다. ‘지속가능성’이라는 주제로 즉흥적인 이미지를 공동으로 완성해내기도 했다. 주로 말로만 의미를 주고 받다가 이 워크숍에서는 몸짓과 표정 등의 비언어로 각자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고 읽어내는 작업을 하니 말로는 오히려 쉽게 전해지지 않은 것들이 서로에게 가 닿았던 것 같아 굉장히 좋았다. 그런 점에서 총회 초반에 이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었다.

 

사실 나에게 총회란, 재미없고 형식적이며 사람 수를 채우기에 급급한 자리다. 으레 해야하는 것. 그래서 그 간 총회와 같은 형식의 자리에 갈 때는 내용을 살피기 보다는 속한 그룹의 일원으로써 책임감에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 2016년 녹색당 유럽모임 총회는 조금 달랐다. 감각을 깨우고 몸을 움직이는 시간도 있었고, 함께 밥을 지어 먹고 모닥불을 놓고 이야기꽃을 피우는 것처럼 친밀감이 생겨날 여백이 있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참여에 대한 강제성 없이도 프로그램 운영과 스케줄 조정, 요리 및 정리를 참여자 모두가 능동적으로 나서서 함께했다는 점이다.

 

물론, 규모가 작은 행사였기 때문에 좀 더 유연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 조금씩 규모가 커진다는 가정 하에 이번 총회와 같은 분위기와 프로그램들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지 고민해보면 좋겠다. 매년 더 많은 사람들이 녹색당 유럽모임 총회에 와서 같이 밥을 해먹고, 놀고 웃고, 환경과 정치에 대한 감각을 깨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생활 속 정치에 대한 고민과 실천이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재밌는 총회는 가능하다!

 

*사진은 녹색당-유럽모임 페이스북 페이지 사진첩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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