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인터뷰 김아람 당원

2017.04.20 16:22

똑녹유 조회 수:186

프랑크푸르트 지역모임 소식에서 많이 뵈었다. 현재 독일에서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지내시는가.


헤센(Hessen) 주의 오펜바흐(Offenbach am Main)이라는 도시에서 살고 있고, 이곳으로 이사 온지는 1년 정도 되었다. 그 전에 프랑크푸르트 (Frankfurt am Main)에서 6년 정도 살았고, 프랑크푸르트 전에 다른 도시에서도 몇 년 살았다. 말 안한 세월까지 해서 독일에서 산지 쬐금 되었다(웃음). 독일에서 고등학교를 나와서 지금은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항상 유럽에 오고싶었던 마음은 있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아버지가 사주셨던 세계 전집으로 유럽에 대한 막연한 환상을 키우다가, 중학교때 처음 입시라는 것에 부딪히게 되면서 ‘아, 한국 사회라는 것이 경제적 하층민이 노력만 한다고 해서 자기가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 는 곳은 아니구나’ 하는 자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 어쩌면 외국사회가 나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감사하게 처음에 부모님과 함께 이곳에 오게 되었고, 부모님은 다시 한국에 들어가셨지만 나와 오빠는 이곳에 남아 공부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의학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는가? 


하고 싶은게 참 많았다. 그중에서 의학이라는분야는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추상적인 개념으로서가 아니라 일 자체에서 발현될 수 있는 실제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십대 시절에 참 매력적이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만약 공부자체가 잘 맞지 않으면 그만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막상 해보니 재미있어서 지금까지 하고 있다. 사실 공부자체는 너무 실용적인 학문이고 암기해야 하는 게 많아서 힘들긴 하지만 그보다 재미있는 것이 더 커서 참고하고 있다(웃음). 또 외국인으로서 독일에서 의학공부를 한다는 것이 힘들고, 공부 외의 일상생활을 포기해야 하므로 아쉬운게 많다. 그래도 그 만큼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를 계속하면서 의학이 참 매력적이라고 느끼는 것은, 이 속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의 경계에 거의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것, 이것을 매일 목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서 나를 배우고 사람을 배우고 세상에 대해서 뭔가 조금씩 배울 수 있다는게 좋은 것 같다.  


독일에서 고등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한국 녹색당보다 독일 녹색당을 더 먼저 알았겠다. 한국 녹색당은 어떻게 알게 되었고, 당원으로 가입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 


메르켈이 초선 총리가 된 총선을 치르던 해에 처음으로 학교 역사-정치 수업에서 독일의 정당에 대해 자세히 배울 기회가 있었다. 그러면서 독일 녹색당을 알게 되었고 의제들에 대해서도 배우게 되었다. 그때부터 녹색당은 내가 가장 주시하던 정당이었다. 한국에 녹색당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계기는 2013년에 박근혜 전 대 통령의 대선 관련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이 불거졌을 때, 프랑크푸르트에서 열린 작은 집회를 통해서였다. 당사자분들이 기억할지 모르겠지만(웃음), 그 자리에 김인건 당원님과 이수빈 당원님이 있었다. 이야기 중에 한국 녹색당이 유럽에도 활동을 하고 있다고 들었고, 굉장히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터지게 된 것이다. 그 때는 뭔가를 같이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이런저런 모임에도 가보고, 한국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가서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나름 혼자서 고민도 하고 공부를 하는 찰나에 녹색당이 생각나서 바로 가입했다. 그때에도 한국사회에서 당적을 가진다는 것에 대해 사람들이 가진 편견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녹색당은 녹색당만의 확실한 의제가 있었기 때문에 망설이지 않았다. 2년 반 정도 녹색당과 같이 있으면서 우리가 포용과 평화를 추구한다는 것, 어떤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서 단호한 구호가 있는 것이 참 좋았다. 


녹색당의 다양한 의제 중 가장 관심있는 분야는 무엇이고, 그 이유는 무엇인가? 


녹색당에 가입한 중요한 이유는 많이 배우고 싶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동물권, 채식, 대안적인 소비 등에 관심은 있었는데, 생활인으로서 어떻게 이것을 실천할 수 있을지 모르니 전문가분들에게 많이 배우고 싶었다. 지금은 기본소득에 가장 큰 관심이 있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나는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웃음). 그래서 공 부를 계속하고 싶은데, 공부만 하면 기본적인 생활을 책임질 수가 없고, 그럼 최소한의 생활을 책임지기 위해서 일을 하다보면 또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다. 공부를 마치게 되어도, 내가 사회에서 경제를 굴러가게 하는 톱니바퀴가 되어야 한다는 무언가의 압박 때문에 하고 싶은 공부를 못하게 한다는 것이 아쉽다. 기본소득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공부를 마치고 나서도 또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너무 즐겁다(웃음). 독일은 소득의 공백을 보완할 수 있는 보조금 제도가 많이 있다고 하지만, 그것도 사각지대가 있어서 못받는 사람들은 결국 못받는 경우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무조건적 인 기본소득이 상당히 매력이 있고, 또 내가 돈이 없어서 받는다는 부채의 식을 갖지 않아도 되니 참 좋다고 생각한다.


기본 소득이 생기면 어떤 공부를 더 하고 싶나? 


(창피하지만) 공부를 더 할 수 있다면 인문학을 공부하고 싶다. 철학이나 인류학을 공부해보고 싶은데, 사실 의학과 이것을 접목한다는 것이 굉장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하고 싶지만, 할 수 있을까, 해서 의미가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다. 


공부를 좋아하면 공부를 계속 해야한다고 생각한다(웃음).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은 계속 공부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웃음).


십대부터 외국에 있으면서 한국의 정치, 사회 소식을 들을 때 마음이 편치 만은 않을 것 같다. 특별히 마음에 오래 남은 국내 사건이나 이슈가 있다면 무엇이고, 이유가 있나? 


한국 상황에는 늘 관심이 있어서 이슈에 관해서는 케치업을하고 있었지만, 단연 세월호 참사가 가장 마음이 아팠다. 세월호는 나로 하여금 관심 갖는 것만이 아니라, 무엇인가 해야겠다는, 어디에 들어가서라도 연대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던 계기였다. 사실 우리 세대가 세월호 참사를 발생하게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종의 죄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이 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시대가 되면 그때는 정말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촛불권력의 요청으로 헌재에서 탄핵이 인용되는 것을 보면서, 9년의 보수 정권에서 처음으로 민주주의가 작동한다는 것을, 작동될 수 있다는 것을 보았다. 내가 국가 주권자의 한 사람으로서 무언가를 생각하고 그것이 잘못됐다고 판단하고 압력을 행사했을 때 뭔가 됐구나 하는 그런 경험 말이다. 이것은 거의 혁명적인 사건이었다고 생각한다. 세월호는 아직 종결된 사건은 아니지만, 세월호의 기억이 나의 정치 참여의 중요한 발판이 되었다. 


외국에서 전문분야의 공부한다는 것은 거의 일상을 포기해야 하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계속해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을 수 있나? 


한국과 독일에서 유년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보내면서 내가 늘 사회적 약자라는 자각이 있었다. 경제적으로도 불안정했고 특히 독일에서는 외국인, 여성, 아시아인이라는 소수자의 정체성으로 이 사회의 내부로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더욱 쉽지 않았다. 또한, 정치라는 것이 사람들이 시간이 남아서 하는 여가활동이 아니라, 내 생활과 직결되는 문제라는 명제를 항상 가지고 살았던 것 같다. 내가 가만히 있으면 나와 같은 사람들의 생활은 위협받는다는 (경험하기도 했고 그런)의식을 항상 하면서 지냈다. 물론 내 오지랖넓은 공감능력 때문일 수도 있겠다(웃음). 무엇보다도 내가 성인이 된 이후 9년이라는 보수정권의 시간이 우리세대에게 ‘정치라는 것은 참여해야 하는 것’을 알려준 것이다. 9년의 시간동안 우리나라에 일어난 일들을 보면, 사실 정치참여를 안하는 게 조금 더 힘든 일이었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정말 외면할 힘이 있는 것이다(함께 웃음). 어떤 사람들은 한국이나 독일이 아닌 제3국의 내전, 난민사태, 테러, 영국의 브렉시트, 미국의 트럼프 당선 등과 같은 일들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자기 의견을 표출하고 행동하는데, 한국인으로서 한국정치에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 같다. 학교 공부 때문에 녹색당 유럽당원 모 임에서 벌이는 일에 적극적으로 활동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지만, 프랑크푸르트 지역모임에 열심히 나가고 있다. 지난 탄핵사태 때 집회나 세월 호 관련한 일에 여력이 닿는대로 계속 참여하고 있다. 


이제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연대의 장으로 나왔다. 어떤 사람들과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가? 


나는 그냥 녹색당이 좋다(웃음). 혼자서 이런저런 공상을 많이 해보는데, 내가 학생이고 추진력이 강한 사람이 아니다 보니까 아직 어떤 활동을 조직해 본 적은 없다. 지난 호에서 유재현 당원이 이야기했는데 내 마음도 꼭 그렇다. 녹색당 사람들을 만나면 반갑고 행복하다. 나와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 함께 무엇인가 공부할 수 있는 가치가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설령 의견차이가 있더라도 그것에 대해서 토론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좋다. 녹색당 모임은 독일생활을 하면서 기다리는 시간 중의 하나이다. 


한국사람들에게 독일이 정치, 사회문화, 경제시스템 등의 여러 영역에서 긍정적인 모델이 되는 것 같다. 그런 것을 떠나 객관적으로 한국과 독일의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방 자치, 즉 지방 분권인것 같다. 한 지역사회가 그 안에서 자치를 할 수 있고, 그것으로 안정이 되는 시스템. 이게 진짜 중요하고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를들어 내가 5년 정도 노스트라인 베스트팔렌(NordrheinWestfalen)주 빌레펠트(Bielefeld)라는 도시에서 살았을 때, 그 당시 지금 사는 헤센 주에 대해 잘 몰랐다. 프랑크푸르트가 독일의 5대 도시이고 국제공항이 있는 큰 도시이지만, 거기까지 가서 무엇인가를 우리 지역으로 가져오지 않아도 우리 주 안에서 자족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최근 전주에 가서 놀랐던 것이 이 지역에 산업구조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전주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서는 다른 지역으로 가서 일해야 한다는 것, 그 지역의 경제구조가 돌아가는데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의 영향이 크다는 것에 정말 놀랐다. 예를 들어 한국의 지역 방송들은 대부분 영세한데, 독일을 보면 그렇지 않다. 방송도 지역방송으로 다 나뉘어 있다. 한국이 적극적으로 이런 것들을 모색해서 시간이 걸리겠지만 궁극적으로 지방 분권을 이뤄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베를린이라는 특수한 곳에 살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주와 주 수도, 도시들간의 상호작용이 어떤지 궁금하다. 


가끔 통역일을 하는데 2015년 메르스 사태가 일어났을 때 한국 보건국 공 무원들과 정치인사들이 헤센주의 주도인 비스바덴(Wiesbaden)에 위치한 보건국을 방문했었다. 당시 독일도 전국적으로 많은 난민이 유입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사안을 독일 정부에서는 어떻게 대처하는지 알아보러 견학을 온 것이었다. 메르스 문제가 인천공항의 검역과정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이 위치한 헤센 주를 찾아온 것이었는데 그때 보건국에서 나온 사람들이 전한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대부분의 사안에 ‘우리는 우리 주만 관할한다’고 했다. 한국 방문단 측에서는 당연히 하나의 중앙컨트롤센터가 존재하고 그곳에서 전국을 다 관할할 것 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독일에서도 중앙 기관과 범역적인 법령도 따로 있지만 실무적으로는 전염병 관리에 관한 대부분의 권한이 각 주별 기관에 위임되어있다는 것에 많이 놀라워했다. 


김아람에게 녹색이란? 


나에게 녹색은 상생이다. 중요한 것은 같이 사는게 전부인 것 같다. 생각해보면 우주에서 점도 안되는 한 명 한 명의 사람들이다. 이 먼지 티끌 같은 사람들이 같이 살아갈 방법을 생각하고 평화를 누리는 것이 녹색인 것 같다.



인터뷰 일시: 2017년 3월 30일 목요일 오후 6시

인터뷰어: 손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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