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원인터뷰 최승은 당원

2019.03.07 09:35

똑녹유 조회 수:15

오조와의 만남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오조는 언니가 키우던 고양이다. 오조가 3개월부터 언니와 같이 살게 됐고, 나는 오조가 2살쯤 성묘(成猫, 다 자란 고양이)가 되었을 때 언니와 같이 살게 되면서 오조와의 동거도 시작됐다. 오조는 분양소에서 무늬가 선명하지도 않고 성격도 새침한 편이라, 형제들 중 마지막까지 입양되지 않은 아이였다. 그런 오조 모습이 언니 마음에 이상하게 계속 남아서 입양하게 되었다. 나한테는 조카 같은 존재다.


오조는 이제 열 살이 넘었다. 나는 원래 눈물이 많은 편이 아닌데, 3~4년 전부터 문득문득 오조를 생각하며 울컥할 때가 있다. 언젠가 오조가 집에 없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다. 어린 시절 엄마가 시장 갔다가 유독 늦게 오는 날이면 혹시 사고 난 게 아닐까 덜컥 겁이 났던 마음과 비슷하달까. 오조가 점점 나이를 먹으니 더 자주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생명이 태어나면 모두 죽는 거라 생각하며, 죽음에 대해 무게를 두지 않는 편이었는데... 오조에 대해선 그 죽음이라는 개념이 너무 무겁게 느껴진다.


동물과는 사람의 언어로 우정을 쌓는 게 아니다. 나도 오조를 애정하고 있다는 것, 오조도 나를 애정하고 있다는 것을 어떻게 교감할 수 있나? 


설명하기 참 어렵지만, 그런 순간순간이 있다. 예를 들면, 내가 우울증을 앓았던 시기가 있는데 그때 이상하게 평소보다 더 자주 나에게 왔다. 당시 내가 침대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오조가 와서 평소보다 더 오랜 시간 내 옆에 머물렀다. 평소 같으면 중간에 자리를 옮기거나 보채는데, 오랫동안 잠들지도 않고 정말 가만히 있어 줬다. 그게 그렇게 위로가 됐다. 5kg의 그 작은 털뭉치와 초록 눈망울이 그 어떤 위로보다 더 강력했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오조가 내 마음을 느끼고 무언가 해주고 싶어 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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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조와 함께 지내면서 가장 변화된 부분이 있다면?


사랑을 배웠다. 말(언어)이 안 통하는 동물과의 교감을 오조로부터 처음 배웠다. ‘생명의 무게, 살아있는 것의 소중함’ 같은 것들을 머리로는 알았는데, 그것을 몸으로 느끼게 해준 것 같다. 비언어적인 소통도 강력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오조를 통해 동물 커뮤니케이터가 사기꾼은 아니겠구나, 다른 동물들도 분명 교감이 가능한 존재들이겠구나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지금은 아니라 말하기 부끄럽지만, 한동안 채식을 한 것도 오조의 영향이다.


약 1년간 베를린에서 행복한 ‘백수’로 지내는 시간이었다. 베를린에 오게 된 계기, 베를린 표를 끊기 전 몇 달간의 승은님 삶을 나눠줄 수 있나?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왔다. 나와 내 삶, 내 주변을 충분히 돌아보지 못하는 상황에 쉼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절대적인 시간의 여유가 없었다기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문제였던 것 같다. 연극에 대한 마음이 크다는 건 충분히 느끼고 있었지만, 만약 그쪽으로 진로를 바꾼다면 정확히 무얼 어떻게 하고 싶은지 제대로 생각해 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연극이 워낙 가난한 일 중 하나다 보니 현장에 가기 전, ‘만약 당장 죽는다면 지금까지 저축한 돈으로 꼭 하고 싶은 게 뭐지?’ 생각했을 때, 독일에 꼭 한 번 다시 오고 싶단 생각을 했다. 대학 시절 독일 바이로이트(Bayreuth)에서 교환학생 한 한기를 보낸 기억이 참 좋았기 때문이다. 독일은 내가 처음으로 스스로에 대해 찬찬히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졌던 공간이었다. 1년 전 이 시간이 나에게 꼭 필요했던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것을 위해 현재 하고 있는 것을 멈추거나 포기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것 같다.


과거에 그런 시행착오를 겪은 적이 있어서 이번엔 좀 더 쉬웠다. 늘 길을 에둘러 가는 팔자라. 생각지도 못한 독어독문학과로 진학하긴 했지만, 원래는 고등학교 때부터 발달심리학을 전공하고 싶었다. 발달심리학이 내가 당시 가정이나 바깥에서 겪는 일들과 그에 대한 나의 반응들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서 엄청 매력을 느꼈다. 발달심리학을 생각하면 막 설레고 그랬다. 그 당시엔 상담 일이 내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30년 플랜에 플랜B까지 짜면서(웃음) 대학원 진학을 준비했다. 그러면서 학술제, 사례발표회 등을 쫓아다녔다. 그런데 사례발표회를 다녀오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담자를 직접 만나 상담한 것도 아니고, 그냥 케이스를 듣는 것뿐인데도 거리 두기를 잘 못 해 힘이 들었던 거다.


‘생각보다 상담 일에 할 그릇이 안 되는구나, 이 일을 하면서 느끼는 보람보다 어려움이 클 수도 있겠구나’를 느꼈는데, 그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렇게 애써 마음의 신호를 무시하며 지내던 중, 학교에서 현지 학기제가 의무화되면서 바이로이트로 교환학생을 가게 된 것이다. 사실 나는 스스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 형편이어서, 독일에 가면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는 게 부담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아르바이트를 더 해서 겨우 비행기를 탔다. 그렇게 투덜대며 아무 기대 없이 온 독일에서 애써 부정해오던 그 시그널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서 내 진짜 목소리가 더 선명해지는 걸 경험한 것이다. 이 경험 덕분에, 퇴사하고 잠시 멈출 용기가 났던 것 같다.


내 목소리가 선명해진 시간, 바이로이트에서의 시간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 달라.


사실 한국에서 학교 다닐 때 직장 다닐 때보다 바빴다. 회사는 주말에 쉴 수라도 있는데 학교 다닐 땐 주말도 없이 시간을 쪼개 써야 했다. 성적 기준 맞춰서 장학금도 받아야 했고,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고, 그 와중에 동아리 활동도 하고 싶었다. 그땐 참 욕심이 많았다. 그런데 독일에선 어차피 아르바이트도 못 하고 15학점만 들으면 되니까 시간이 남았다. 오늘 뭐 해 먹을까 고민하고, 자전거 타고 돌아다니고, 학교 갔다 장 보고 요리하고 밥 먹고, 가끔 친구 만나면 금새 하루가 갔다. 그런 일과가 처음이었고 너무 행복했다. 귀한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막상 여유가 생기니 잔뜩 싸 들고 온 심리학책을 생각보다 잘 안 들여다보게 되더라. 심리학이 그렇게 바쁘고 힘들어도 틈틈이 책을 볼 정도로 나를 설레게 하는 공부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힘들어서, 힘들기 때문에 더 붙잡고 의지한 공부라는 걸 알게 됐다. 사례발표회를 다녀올 때마다 느꼈던 내 마음의 불편함과 무거움도 설명이 됐다. 다른 사람의 마음은커녕 내 마음 돌봄도 서툰 사람이라는 걸, 누군가의 인생에 관여할 수 있을 만큼 넓고 깊은 사람이 아니라는 걸 정직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오랜 꿈을 접고 한국에 돌아왔을 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일단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으니 취업을 해야겠는데 아는 것도 준비된 것도 없었다.


대기업 해외 마케팅 부서에서 일했다고 들었다.


진짜 운이 좋았다. 다른 동기들처럼 경상계열 복수전공도 없었고, 당장 제출할 토익 점수도 없었다. 공채 시즌 전까지 영어 점수 만들어 놓고, 그전까지는 밑져야 본전이라 생각하고 인턴 자리에 지원했다. ‘경상계 우대’라고 쓰여 있지만 않으면 거의 다 썼는데 딱 하나 붙은 거다.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 케이스인 지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고, 여전히 취업 준비하느라 고생하는 친구들 생각하면 진짜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너무 저자세로 일을 시작했다. 사실 생각보다 맡게 된 업무는 잘 맞고 재밌었다. 하지만 내 그릇 만큼, 내 숨만큼 일하는 것도 능력인데, 특히 초년생 때는 그걸 잘 못 해서 스스로를 힘들게 만들었던 것 같다.


연극을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을 그때 다시 한 건가?


일에 파묻혀있을 때도 숨통 트이는 시간이 바로 연극 보는 시간이었다. 연극은 내 일상에서 양보하고 싶지 않았다. 그게 너무 좋으니까 보는 거로 만족을 못 하고, 예전에 연극할 때가 너무 그립고 또 직접 해보고 싶어졌다. 그런데 이것도 그냥 내가 힘드니까 괜히 더 마음을 키우는 걸지도 모른다고, 지나가는 바람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심리학처럼 연극에 대한 나의 설렘이 또 틀릴까 봐 겁이 났다. 그래서 3년을 잡고 지켜보기로 했다. 회사생활이 늘 힘든 건 아닐 테니 힘들지 않은 순간에도 연극을 찾게 된다면, 그리고 그런 마음이 3년 동안 꾸준 하다면 그때는 진지하게 생각해봐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연극을 처음 접하고, 직접 연극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 하게 되었나?


신입생 때 학과에 동아리가 딱 두 개밖에 없었는데, 연극 동아리 팸플릿이 멋있길래 가입했다. 근데 하필 그 해 가입한 여자 신입생이 나밖에 없어서, 스텝 시켜준다고 꼬시던 선배들이 여주인공 배역을 맡겨버렸다(웃음). 독일 극작가인 게오르크 뷔히너(Georg Buchner 1813-1837, 의학과 자연과학을 공부했으며, 정치 활동에 참여하다가 비합법적인 팸플릿을 만들어 당국에 쫓겨 망명 생활을 하기도 함. 유복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무대공연 사상 처음으로 가난한 계층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연극을 씀)의 <보이첵(Woyzeck)>이라는 작품이었다. 나는 보이첵의 부인 마리 역할을 맡았다. 극 중에서 최하계층의 병사인 보이첵은 온갖 권력에 처참히 이용당하는데, 부인인 마리에게도 배신당하고 미쳐서 결국 마리를 찔러 죽이게 된다.


그 당시 나는 등장인물 중 마리 캐릭터 서사가 제일 이해가 안 됐다. 내가 누군가를 이렇게까지 깊이 있게 이해해보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나 싶게 나름대로 열심히 분석한다고 했는데, 캐릭터에 마음이 가닿지 않으니 답답했다. 게다가 보이첵을 맡은 동기는 너무 연기를 잘했다. 정말이지 메소드 연기였다(웃음). 그 옆에서 머리로 욱여넣어 이해시킨 발연기를 하려니 너무 부끄러웠다. 그렇게 불안한 상태로 올라간 무대에서, 이틀 공연 중 그것도 딱 하루. 독백 장면에서 갑자기 마리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찰나였다. 그런 순간이 자주 있었다면 나는 뛰어난 배우였겠지만 그건 아니었고. 그냥 그 찰나의 느낌을 잊지 못해 4년 내내 연극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같이 만들어나가는 공동작업의 재미를 안 이상 그 매력을 벗어나기 어려운 것 같다. 여섯 작품 정도 관여했고, 워낙 작은 동아리라 배우, 연출, 무대/조명/음향 디자인 이것저것 다 해볼 수 있었다.


베를린에 있는 여러 극장을 다녀보고 직접 맛보았다. 연극이 재미없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베를린이 가진 매력을 소개해 준다면?


독일에서 독일어가 유창하지 않은 사람도 양질의 연극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최고의 도시가 베를린인 것 같다. 독일의 다른 도시들도 워낙 극장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 뛰어난 극을 쉽게 만날 수 있지만, 베를린은 영어 자막을 제공하는 레퍼토리가 풍부한 극장도 많고, 대학로처럼 많은 극장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어 접근성이 좋다. 독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연출가들도 베를린에 베이스를 둔 경우가 많아, 기회가 된다면 생생한 무대를 즐겨보시는 것을 추천한다.


이곳에 있으면서 한국에서 여전히 열심히 일하는 친구들과 동료들을 볼 때 어떤 마음이 들던가? 친구들은 승은님이 부러웠을 것 같다.


응원하는 마음이다. 멋지다고 생각하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어느 사회나 대부분은 직장인의 삶을 살고, 그래서 직장인이라는 직업은 ‘평범한’라는 말로 가벼이 묶여버리기도 하지만 그들이 하루하루의 일상을 얼마나 충실하게 살고 있는 지 안다. 그들이 짊어지고 있는 책임들이 평범함이라는 말 뒤에 가려지기엔 무거운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어떤 면에서 나는 그 책임을 벗어두고 이곳에 와있는 거라서 더 그런 것 같다. 건강의 소중함도 깨달아 봤고. 친구들한테는, 고민할 꿈이 있다는 게 부럽다는 이야기를 제일 많이 들은 것 같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퇴근 후 촛불집회에 나가 이 사회가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함께 냈다. 처음 정치, 사회 이슈에 관심 갖게 된 계기는?


대학에 입학 즈음 소고기 파동이 있었고, 학과에 운동권 선배들이 많았던 편이라 자연스럽게 사회 이슈에 많이 노출됐다. 하지만 선두에 나서는 학생은 아니었고, 등록금 동결 집회나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집회처럼 내가 그 내용을 잘 알고, 목소리 낼 수 있다고 생각한 집회 정도만 참여한 소극적인 학생이었다. 회사 다닐 땐, 세월호 사건도 당연히 컸다. 본가가 안산에 있어 바로 우리 동네 이야기였고, 내 동생 또래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사실 그런 연결고리가 없었다 해도 워낙 국가적 트라우마였지 않은가. 나 역시 그랬다.


사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고민이 깊지 않았던지라, 열심히 공부하고 목소리 내는 사람들에게 고마웠다. 나는 먹고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하고 있는 게 없으니 늘 부채감이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고 생각했고, 촛불집회에 나간 건, 그 몇 안 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였다.


처음 녹색당에 어떻게 가입하게 되었는가?


교환학생 시절 알게 된 독일 친구들이 정치에 관해 풍성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신기했다. 환경, 지속가능한 삶과 같은 것을 고민하는 녹색당이라는 정당이 있고, 이 정당이 제4 당으로 이렇게 의석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후 한국에서 2016년 총선에 이유진 당원이 동작구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는데, 집에 온 선거공보들을 보다가 이유진 후보를 알게 됐다. 그때 처음으로 한국에도 녹색당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탈원전, 친환경 정책, 동물권 이야기를 공약에 적어두었는데, 신선했다. 동물권이 선거홍보물에 쓰여 있는 게 그렇게 반갑고 멋졌다. 그렇게 당원 가입을 하게 됐다.


작년 세월호 4주기 모임에서 처음 만났다. 그 뒤로 녹유 총회, 녹색평론 독자 모임, 기본소득 모임, 텃밭 모임, 미투 모임도 함께 하고, 퀴어 축제, 여성폭력 철폐 시위, 여성차별 반대 시위, 농민 시위에도 함께 했다.


덕분에 정말 많이 배우고 느끼고 돌아간다. 이 전보다 많은 시간과 여유가 생겼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게 늘어났는데, 그 할 수 있는 것들을 녹유 당원들이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린다.


승은님을 사랑하고 애정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인복은 늘 좋았던 것같다. 베를린도 사실은 나 들여다보겠다고 왔지 사람 만날 생각으로 온 건 아니었는데 결국 남은 건 또 사람이지 않은가. 베를린에서 만난 분들께도 정말 감사하다.


좀 더 어렸을 때는, ‘나만 열심히 잘 하면 어떻게든 길은 나온다’고 믿고 그렇게 말하고 다녔다. 근데 지금 보니 그 때까진 그냥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살다보니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불가역적인 일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누군가에게는 ‘너만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길은 있어’ 라고 말하는 건 가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흔들리고 허덕일 때, 그 시간들을 버티고 한 발자국 나아가게 하는 건 나의 힘일수도 있겠지만, 실은 많은 부분 그 순간 옆에 있어준 사람들의 힘이 크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승은에게 녹색이란?


내가 아닌 다른 사람, 생명체들과 세상을 감각하게 하는 자극제이자 촉매제.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내가 얼마나 좁고, 가만히 있으면 편협해지기 쉬운 사람인지를 알게 되는 것 같다. 녹색당과 녹색의 가치들은 그런 나를 더 좁아 지지 않을 수 있게 자극하고 훈련시켜준다. 그 할 수 있는 것들을 녹유 당원들이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한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승은님을 사랑하고 애정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다른 건 몰라도 인복은 늘 좋았던 것 같다. 베를린도 사실은 나 들여다보겠다고 왔지 사람 만날 생각으로 온 건 아니었는데 결국 남은 건 또 사람이지 않은가. 베를린에서 만난 분들께도 정말 감사하다.


좀 더 어렸을 때는, ‘나만 열심히 잘하면 어떻게든 길은 나온다.’고 믿고 그렇게 말하고 다녔다. 근데 지금 보니 그때까진 그냥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살다 보니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불가역적인 일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누군가에게는 ‘너만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길은 있어’라고 말하는 건 가혹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렇게 흔들리고 허덕일 때, 그 시간들을 버티고 한 발자국 나아가게 하는 건 나의 힘일 수도 있겠지만, 실은 많은 부분 그 순간 옆에 있어 준 사람들의 힘이 크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승은에게 녹색이란?


내가 아닌 다른 사람, 생명체들과 세상을 감각하게 하는 자극제이자 촉매제.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내가 얼마나 좁고, 가만히 있으면 편협해지기 쉬운 사람인지를 알게 되는 것 같다. 녹색당과 녹색의 가치들은 그런 나를 더 좁아지지 않을 수 있게 자극하고 훈련시켜준다.



*인터뷰어 및 정리: 손어진 당원

*인터뷰 날짜: 2019년 1월 26일 오후 5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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