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타님의 책을 곱씹었던 지난 2주는 내게도 짧지만 강렬한 치유의 시간이었다. 누군가의 지난했던 인고의 시간을 과연 단숨에 읽어 내려가도 되는 것인지, 일부러라도 숨을 고르며 차근차근 책장을 넘겼다. 챕터 각각 적용할 만한 내용들을 노트 한쪽에 옮겨놓고서는 책과 함께 나 자신과의 상담을 시작하곤 했다. 그 순간만큼은 나는 ‘상처 입은 치유자’ 내담자이자 상담가였다. 내 안의 목소릴 듣기 위해 적정한 시간을 배분하고, 에너지를 내어 집중하는 일이 우리 일상에서는 꽤 낯선 작업이라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책에서 몸을 위한 실천이 여럿 제시되어 있듯이 나 또한 한국에서 몇 가지 실천하며 지냈었다. 하지만 이런 시도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보이는 몸에 대한 시선, 그리고 여러 말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괜찮다는 자조 섞인 말은 입안에서만 맴돌 뿐, 결코 발화되지 못했다. 돌이켜보니 스스로 만든 몸에 대한 제약도 많았다. 키가 작으니, 배가 나왔으니, 팔이 두꺼우니 등등의 말들의 틀로 내 몸을 가두고 있었다. 그러던 중 독일로 삶의 터전을 바꾼 것은 그야말로 획기적인 기회였다. 시공간과 관계의 단절이 나에게 이름 모를 용기를 선사해 준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내 내 몸의 목소리에 친절한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가끔은 노브라로 나의 속박된 가슴을 자유롭게 한다던가, 그동안 몸에 대한 타인의 시선 때문에 입지 못했던 옷들을 마구 입었다. 참 좋았다.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나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을 욕망 그대로 인정한 것일 뿐인데, 자신감이 생겼다. “봐~ 생각보다 괜찮잖아!” 독일 거울이나 한국 거울이나 같을 텐데 말이다. 이곳에서 내 목소리 듣기 훈련에 좀 더 적응되면 한국에 돌아가더라도 마찬가지로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이곳은 수많은 시도를 해보기 참 좋은 환경이다. 친환경 식료품 및 생필품을 이용하여 내 몸을 소중히 대접할 기회가 어느 곳 보다 열려있다. 마침 한국에서 생리대 파동이 일었을 시 붐이었던 월경 컵도 하나 사두었다. 

이야기로부터의 연대 

사실 자기 이야기를 꺼내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안정적인 울타리 없이 발화하기는 어렵다. 아무리 강철 마음이래도 한두 번 발화에 대한 부정적 경험이 쌓인다면 더 이상 이야기는 수면위로 떠오르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책표지에 강렬하게 새겨져 있는 ‘나는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 어떤 이슈에서든 여성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좀 더 많이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고 믿는다’ 글귀가 절절하게 와닿았다. 생각해보면 나 또한 친구들로부터 내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보호받아왔다. 여자들끼리 모인 자리, 밤이 깊어지고 우리의 내면을 모두 드러내는 투명한 시간이 다가오면 풀어진 이야기는 결코 나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나의 경험이 너의 경험이었고, 너의 경험은 이내 우리의 경험으로 녹아졌다. 서사의 힘이란 이다지도 놀랍다. 

이야기는 존재한다. 그리고 언제든 살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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