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의 흔적을 음미했던 독일 여행


작성: 김현수 (서울 종로구)


재생에너지에 관심이 많은 나로서는 2년 전부터 탈핵을 선언한 국가인 독일에 대한 호감과 막연한 동경이 있어왔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들이 꽤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독일의 상황을 직접 체험해보며 우리 한국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점을 찾고 싶은 열망은 커져갔고 결국 2015년 12월에 25일간 독일 여행을 실행할 수 있었다. 


돈으로 안되는 게 없다는 한국 사회. 즉 자본주의의 과잉으로 인권보다는 돈을 우선하는 사회. 불로소득으로 재산 증식을 하는 고소득층과 하루하루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야근도 당연 시하느라 정치적,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참여할 시간을 내기도 어려운 사람들이 극단적으로 공존하는 한국. 물질적 대가를 얻기 위해 노동 착취로 인한 팍팍한 삶을 감수해야 하 는 건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여가를 누리는 시간보다는 소득을 위한 근로시간에 내 인생이 소모되고 있다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이로부터 변화를 도모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적게 벌더라도 초라한 삶이 아닌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 싶은 사람이라면 독일(다른 국가들도 물론 있겠지만)에 대한 동경을 갖게 될 것이다. 전쟁과 분단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독일은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지만 해결과정에서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했다는 점을 이스트사이드 갤러리와 홀로코스트 추모관, 빌리브란트 박물관을 다녀오면서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로 인해 문제의식을 느낀 독일 국민들은 적극적으로 대응하였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해 한국에서도 뜻 있는 사람들이 모여 탈핵을 외쳤고 녹색당이 창당되었다. 하지만 그 힘은 아직도 매우 미약하다. 그래서인지 녹색당 출신의 의원이 있다는 독일에서의 삶을 체험해보고 싶은 욕구가 컸다. 물론 모든 독일인들이 녹색당원이거 나 환경의식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독일녹색당의 활동은 한국과 비교하자면 대단한 것이었다. 


독일을 처음 가보는 상황이다보니 설렘도 있지만 불안감도 있었다. 내가 도움을 청할 사람들 이라고는 독일에서 거주하는 녹색당원들뿐이었다. 

먼저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환경거버넌스를 공부하는 정세연 당원이 12월에 녹색당 모임을 한다는 소식에 참여의사를 전했고, 세연씨는 내가 독일에 도착하는 일정을 배려하여 19 일에 모임을 하게 되었다. 이 날 녹색당원이 아닌 분들까지 포함하여 8명이 모였다. 비빔밥을 함께 먹고 나서 살아가는 이야기, 녹색당 지역사업과 활동계획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환경 영화도 보았다.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지 않더라도 부족함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세연씨가 살고 있는 집과 동네는 인상적이었는데 이곳은 장작을 가져다가 불을 때어 난방을 하는 것이 가능했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이 밀집한 서울에서 텃밭을 가꾸려면 상당한 의지와 노력이 필요한데 이곳은 텃밭을 가꿀 수 있는 것이 어렵지 않은 구조였다. 일단 고층 주택이 없었다. 거리가 빽빽하지도 않았다. 


서울에서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한 먹거리 지키기 운동을 하고 있는 전선경 씨가 섭외한 전문가 인터뷰에 동행하기도 했다. 베를린에 거주하며 독일 방사선보호협회라는 민간단체에서 기관지를 발행하는 토마스 씨의 활동을 들을 수 있었다. 토마스 씨는 물리학을 전공하셨고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이후 방사선 관련 소식지를 30년 가까이 우직하게 발행하고 있었다. 이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독일이라고 해서 많은 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극히 드물었다. 정부보다 시민사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며 용기를 내라고 격려해주신다. 전선경 씨가 한국에서 해왔던 활동을 공유하고 방사능 안전 수치 기준에 대해 질문을 했다. 통역은 염광희 당원이 맡아주셨다. 내가 독일 환경단체가 만든 홍보물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으니 토마스 씨가 기꺼이 주셨는데 여기에 담긴 내용은 '국민들은 각자 배출하는 쓰레기에 대한 비용을 내고 있다. 핵산업계도 핵폐기물 처리비용을 내라.'는 뜻이라고 한다. 수 백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을 방사능 핵폐기물 처리비용을 국민의 세금으로 채우려는 핵마피아들의 이기주의를 정확히 지적한 것이다. 


2013년 12월, 나는 서울시의 보조금을 받아 우리집 베란다 난간에 소형 태양광을 설치했다. 2014년에는 서울시청에서 에너지설계사로 일하며 서울시 미니태양광 보급지원사업에 동참한 시민 조직 업무를 했다. 독일에서도 가정에 태양광을 설치한 사례가 많다는 것을 알 고 있었기에 프라이부르크와 서울의 태양광 설치 현황을 비교하려는 목적으로 인터뷰를 시 도했다. 영어통역에 능숙한 정세연 당원의 도움으로 12월 21일 오후에 태양광 설치 15년차 인 보봉마을 주민 메밍씨를 만나볼 수 있었다. 내가 준비해간 녹색당 뱃지를 받자마자 옷에 달아보는 메밍씨의 호의가 매우 감사했다. 


베를린으로 와서 녹색평론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정치학을 공부하는 손어진 당원이 모임 조직에 적극적으로 도왔고, 1월 7일 저녁에 유재현 당원 집에서 9명이 모여 모임이 진행되었다. 

서로 다른 영역에 있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는 것. 자신을 표현하며 마음을 나누고 의견을 자유롭게 펼치고 그러면서 삶을 채워나갈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다. 5시간이 넘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녹색평론 11-12월호 '해방 70년, 전후 70년에 생각하는 ‘일본문제’ (김종철 녹색평론 편집인) 공개글을 읽어오기로 했고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상 깊은 구절을 낭독하고 그 에 대한 생각과 추가 의견이 오고갔다. 나치의 만행에 대해 반성한 독일의 모습과 달리 위안 부 문제에 대해 결코 사과하지 않는 일본의 뻔뻔함에 대해 언급한 것은 물론이다. 왜 한국은 역사적 피해의식과 한의 정서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가? 과연 한국만 그런 것인가? 식민지 역사를 가진 국가들은 우리 말고도 많이 있다. 그럼 피해 국가들은 왜 지금까지 연대해오지 않았을까? 등등. 

또한 녹색평론 2016년 1-2월호에는 유재현 당원이 ‘한국 녹색당 유럽지역 모임’이라는 제 목으로 기고한 글이 실렸다. 

이곳에 살고 있는 교민들의 생소하면서도 따뜻한 삶의 모습을 들어볼 수 있었던 점도 독일 생활에 대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 날 모임에서도 텃밭 가꾸기에 대한 이야기가 자 연스럽게 나왔다. 자신이 직접 기르는 식물로 밥상을 차릴 수 있다는 것. 로컬푸드를 먹는 것 만으로도 엄청난 에너지 절약이라는 것과 식물의 생장을 통해 인간 역시 정신적으로 큰 힘을 받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난 언제쯤 실천할 수 있을까? 손어진 당원이 살고 있는 샬로테부르크-윌머스돌프 지역은 녹색당 의원이 13명이나 있었다. 구청 게시판에서 찍은 녹색당 의원들 포스터이다. 


프랑크푸르트 거리에서는 가로등 아래 삼각형 거치대에 설치된 녹색당 홍보물을 볼 수 있었다. ‘세계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에서 실행하라.’는 문구와 함께 토론회 일정도 소개하고 있었 다. 


한국에서는 4월에 선거를 치르게 되어 녹색당은 선거 준비로 분주하다. 현재 비례대표 후보와 지역구 출마 후보를 선정한 상태이다. 특히 선거에서 녹색당은 3% 이상 득표해야 비례대 표의원이 탄생할 수 있기에 당의 존립과 방향성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시점이다. 인지도가 낮은 녹색당을 시민들에게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 녹색당에 투표하면 사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현재 한국은 기득권층이 부정부패를 일삼고, 보수 정당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적 상황에 있다보니 녹색당은 시기상조라는 말도 많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녹색당을 찍어야 하는 이유는 존재한다. 사회적 약자들의 희생이 더욱 커지는 불공정한 현실을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녹색당을 알리기 위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유럽의 녹색당원들도 한국의 상황에 큰 관심을 갖고 응원 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우리 모두 명심할 점은 지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갈 것. 어느 자리에 있든지 꾸준히 소식을 교류하고 연대하며 힘을 모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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