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1 10:06
2023.12.14 <독일에서 본 82년생 김지영 연극 후기>
아 기다리고기다리던 82년생 김지영을 보는 날이 되었습니다!
책을 원작으로 한 연극을 본적 없어서 줄글이 어떻게 연극이 되었나 무척 궁금했습니다.
뮤지컬처럼 노래가 많이 나오거나 무대가 바뀌는게 아니라 독백이면 어떡하지 살짝 걱정도 했습니다.
<82년생 김지영> 책도 읽고, 영화도 봐서 이야기가 낯설지 않아 독일어로 진행되는 연극을 따라가기 쉬웠습니다.
공연은 상상 이상으로 좋았습니다!
공연장에 한국 사람이 많이 없고 대부분 독일 사람들이어서 이 분들은 어떻게 알고 찾아오셨나 같이 궁금해하기도 했습니다.
세 명의 김지영들이 나와 김지영이 됐다가, 남편이 됐다가, 엄마가 됐다가, 시어머니가 됐다가, 언니가 됐다가 변화무쌍한게 좋았습니다. 실제로도 한 사람의 정체성은 여자일수도, 엄마일수도, 시어머니일 수도, 직장인일수도 있으니까요.
이번 이야기에서는 누가 김지영일지 알아차리는 것도 어렵지 않았습니다.
가장 인상깊었던 대사는 “Was verlierst du???”였습니다.
부산 시댁에 가서 아이는 언제 가지냐고 온갖 압박을 들은 김지영이 남편과 대판 싸우고 남편이 너무도 쉽게 “해결하는 방법은 쉬워. 아이를 하나 가지면 되잖아?”라고 해서 돌아온 대답이었습니다. “너는 뭘 잃는데?”
또, 김지영의 언니가 독립하고 드디어 태어나 처음으로 김지영이 자기만의 방을 가진 장면에서 환호성을 지르고 펄쩍펄쩍 뛰고 기뻐하는 모습도 인상깊었습니다.
설치물을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면서 무대가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시간의 흐름과 김지영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바이올린 연주가 있어 상황에 더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신경을 건드리는 날카로운 소리와 서스펜스 같은 연주였습니다.
마지막에 조남주 작가의 ‘딸이 살아갈 세상을 바꾸기 위해 싸운다’라는 메시지는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에이 나는 저 정도는 아니었지’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돌아보면 김지영이 겪은 일들은 너무나 일상적입니다.
나를 괴롭히고 못되게 굴던 남자애를 제지하지 않고 ‘쟤가 너 좋아하는 거야’라는 사회, 아들은 안 낳을거냐는 친할머니, 남자 손자를 더 예뻐하던 친할머니… 통계로 증명된 여아 낙태, 경력단절, 임금 성차별. 생각해보면 김지영의 세대보다 늦게 태어났지만 비슷한 일을 겪고 자랐습니다.
하지만 사회가 조금 더 평등하고 차별 없는 쪽으로 바뀌었다면, 그건 먼저 앞에서 싸워주었던 여성들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세대 여성들이 <82년생 김지영>연극을 본다면 ‘무슨 저런 말도 안되는 소리가 있어’하며 공감이 가는 경험이 전혀 없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