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29 15:17
나에게 녹색당은 플랫폼과 같다. 녹색당을 통해 많은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녹색당 사람들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와 방향성이 잘 맞았기 때문에 처음 만났어도 이야기가 잘 통했다. 마치 아주 오래 알고 있는 사람들처럼 잘 통했다. 우리는 으쌰으쌰 새로운 모임을 만들기도 했고 시위에 함께 참여하기도 했다. 녹색당을 통해 알게된 사람들과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녹색당 활동을 독일에 와서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도 당원이었지만 녹색당 모임이나 녹색평론읽기모임에 꾸준히 나간 적은 없었다. 한국 녹색당원은 녹색당 유럽당원모임(녹유)을 만들어 2013년부터 활동을 하고 있었다.
녹유 모임이 나에게 중요했던 이유는 나의 숨통을 틔워주었기 때문이다. 외국에 나와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처음 겪어보는 인종차별과성차별이 혼재된 문제가 많이 괴로웠다. 이런 문제는 혼자 끌어안는다고 해결되지 않았다. 크게 말하고, 같은 피해를 받은 사람들의 따뜻한 위로를 받고, 함께 이 문제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녹유 당원들과 여러 모임을 통해 만나며 나의 갈증은 많이 해소되었다. ‘그페미’모임에서는 독일에서 동양인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녹색평론읽기 모임에서는 매달 다른 글을 읽고모여 경제, 기후위기, 농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가 독일에서 생업과 학업사이 짬을 내고 시간을 내서 녹유 총회를 열고, 모임을 기획하는 건 녹색당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삶에 와닿는 화두들은 녹색당의 중심 의제이기도 하다. 언제 사고날 지 모르는 핵발전소 폐기, 기후위기 정책과 그린 뉴딜, 코로나시대 이후에 꾸준히 논의되어야 할 기본소득, 여성들의 삶을 위협하는 불법촬영과 N번방의 강력한 처벌과 페미니즘 정책.
총선직전의 선거연합 논의와 그 이후일들을 보며 힘들어하는 당원들이 많았다. 탈당을 한 당원들도 많았고, 탈당을 고민하는 당원도 많았다. 당원으로서 선거 직전에 이런 일들로 녹색당을 떠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마음이 안좋았다. 녹색당에 남은 당원들의 마음이 가벼운건 아니었다. 녹색당 전국당이 거의 와해된 상태에서 당원들의 마음을 달래고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책임자들이 많이 남아있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녹색당에 남아있는 이유는 녹색당이 아니면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녹색당만큼 내가 지지하는 정책을 내는 정치인과 정당이 한국에는 없다. ‘성소수자 인권은 나중에’ ‘외국인 노동자 인권은 나중에’, ‘난민 문제는 나중에’ (…) 등등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를차별하는 언어를 마음대로 쓰는 한국 정치는 갈 길이 멀다. 외국에서 느낀 점은 그런 소수자에 나도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외국인 유학생’, ‘외국인 노동자’, ‘동양인 여성’, ‘이주민’, ‘난민’ 이런 단어가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살아온 나에게는 익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걸음 나와보면, 결국 모두 내가 포함될 수 있는 단어이다. 소수자를 혐오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한번도 그런 소수자인 적 없고 앞으로도 소수자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소수자가 되었을 때, 과연 그를 누가 도와줄 것인가.
나는 녹색당이 앞으로도 빠른 길이 아닌 느린 길로 오래 걸어갔으면 좋겠다. 당장 앞에 놓인 문제에 급급한 정치가 아니라 느리게 가더라도 모두 함께 가는 길이었으면 좋겠다. 그 길에는 여성, 비정규직,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난민이 함께 할 것이다. 그들이 같이 걷는다면 나도 그들 곁에서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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