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29 10:25
무거운 마음으로 가볍게 씁니다.
녹색당에 처음 가입하던 순간을 떠올려 봅니다. 막 이십대 초반 녹색당이라는게 생긴다는 말을 듣고, 꿈꾸던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모였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죠. 이제 막 성인이 되었는데, 정당이라는것을 가입해도 될까? 하는 고민을 했지만 가입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어떤 소속보다 스스로 선명해지는 제 자신을 느꼈었죠.
생태적 가치, 녹색전환, 비 정당의 정당 같은 주류에서 볼 수 없었던 이야기를 하는 녹색당에 한시도 소홀히 할 수 없었습니다. 시간을 쪼개서 지역당원 모임에도 나가고, 할 수 있는 선에서 활동을 하기도 하고, 녹색당원이라 알리던 시간들이었고, 희망이라 여겼습니다. 그런 당원 한명 한명의 열정을 동력으로 움직이던 정당이였고,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녹색당은 드러내기 부끄러운, 곤란한 존재가 되었어요. 마치 주기를 반복하듯 일어나는 당원 내 젠더문제와 성폭력사태가 너무나도 괴로운 딱지로 붙었습니다.
당직자들과 당원들은 열심히 수습을 하기 위해 전국을 돌며 젠더감수성 강연회, 당원 재교육을 펼치기도 하고, 평등문화를 만들기 위해 다 같이 읽고 나누기도 했었죠. 하지만 언제 어디서나 꼭 이상한 말을 늘어놓는 남성당원들이 있었죠. 늘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발목이 잡힌다 느꼈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이 소수라고 생각하고, 같은 당원이지만 상대를 하지말자고 넘겼습니다.
요즘엔 그 소수의 사람들이 당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들을 저지르는것 같아 대체 알만한 사람들이 모였는데, 대체 왜이럴까? 생각이 들면서 초기 당의 모습을 떠올려보았습니다. 과연 그런 사람들이 소수일까?
거의 8,9년전 지역에서 젠더 의제 모임을 하고싶다고 연락을 했을때 어떤 남성 당원은 제게, 잘난척 하는 꼴페미들에는 관심 없고, 자기는 녹색전환이나 탈핵에만 관심이 있다며 연락하지 말라는 식의 답변을 받은적 있었어요. 탈당하셨겠지요. 몇년전 서울 시장 후보의 당당한 포스터가 나왔을때저거는 녹색당이 아니라며 가장 중요한 탈핵이나 생태의 가치를 어디 버렸냐 비난을 하는 몇 당원들의 반응을 기억합니다. 탈당을 한다 하셨던것같기도 하고.
녹색당 뿐만 아닙니다. 기후위기의 사회에서 대안적인 시도를 꿈꿔볼때, 기존의 주류 문화가 아니라 대안의 문화를 만들어 볼때, 나를 바꾸고 우리를 바꾸는 일들을 꿈꾸면서 해야할 사소한 수 많은 일들이 생기죠. 그때 저는 왜 늘 여성의 손으로 그 일들이 이루어질까? 하는 고민이 들었습니다. 살뜰하게 가꾸고 관리하는걸 왜 여성(당원)들이 훨씬 뛰어나게 잘 할까? 하는 생각도 하고요. 생태의, 동물들의 들리지 않는 소리에 왜 여성들이 더반응할까요?
변해야 한다며 앉아서 떠드는건 남성들이 잘하지만, (화폐가 아니라) 실제로 먹여 살리는건 언제나 여성의 일인것 처럼 느껴집니다. 생태적 전환을위해 에너지를 사용을 줄이고, 농사를 짓고, 공동체 활동을 할때 여성들은 과연 어떤 모습인가요?
열정있는 분들이 만드신 녹색당 홍보 앞치마를 보며, 왜 또 기존의 성역할을 공고히 하는 사물인 앞치마 일까, 과연 얼마나 많은 남성 당원들이 저앞치마를 입고, 보살피는 일을 하게 될까? 하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녹색 정치 아래에서 여성들의 모습이 변할 수 있을까요?
녹색 전환이 이루어질때 여성들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녹색당의 가치에서 젠더와 퀴어이슈는 언제나 뒤로 밀리는 일 일까요?
비남성의 시각을 남성들은 끝끝내 가질 수 있을까요?
녹색전환이 이루어질때는, 각각 다양하게 존재하고 살아있는 개인적인 존재를 무시하고, 부정하고, 어떤 목적을 위한 도구로 보는 시선, 걷어질 수있을까요?
생태계를 파괴하고 기후변화를 만들어내는 이 자본주의를 타파할때 가부장제가 같이 망가지면 안될까요?
녹색당은 기존의 정당들과 다르게 여성들이 과반이상을 차지하고, 여성들에 의해 돌아가는 정당입니다. 여성파워가 더 강력하다 말하는 사람들도많습니다. 하지만 우리 내부에서도 그 여성들이 기존 사회와 똑같이 피해자가 되고, 피해를 입습니다.
이제는 스스로 의문이 듭니다. 뭐가 다르긴 한걸까요? 뭘 어떻게 해야할까요?
당내에서 성폭력 사건이 터질때마다 탈당하면 끝인가요? 아니, 성폭력을 저지르고 탈당 해버리면 끝인가요? 당신들에게 여성당원은 대체 어떤 존재인가요?
우리는 왜 녹색당을 하고 있는거죠?
진정한 비남성의 정당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제가 어떻게 녹색당을 더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언제까지고 계속 녹색 당원으로 남고 싶습니다. 자각하시고 또 자중하십시오. 녹색당은 남성의 시각을 가진 당원들의 뼈아픈 자기반성이 필요합니다.